전례 없이 G2 언급해 파문
미중 대등한 위치라는 의미
“트럼프 가진 세계관 보여줘”
“中 기뻐하나 동맹들은 불안”

ⓒ천지일보 2025.11.04. (챗GPT)
ⓒ천지일보 2025.11.04. (챗GPT)

[천지일보=이솜 기자] “G2가 곧 회동할 것이다!(THE G2 WILL BE CONVENING SHORTLY!)”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산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남긴 한 문장이다. 이 짧은 문장은 곧 외교적 지진으로 번졌다. 2000년대 초 제안됐다 사라진 ‘G2(Group of Two, 주요 2개국)’ 즉 미국과 중국이 세계 질서를 공동으로 이끄는 2국 체제라는 개념을 현직 미국 대통령이 다시 꺼낸 것은 10여년 만이었다.

외교에서 짧은 단어 하나도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글을 통해 미·중 관계에 대한 접근법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에는 반가운 신호였지만 중국의 부상하는 세계적 영향력을 우려하는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는 불안한 신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주말에 올린 글에서도 “시 주석과의 G2 회담은 양국 모두에게 위대한 자리였다”며 “이번 회담은 영원한 평화와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썼다.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도 중국 둥쥔 국방부장과 통화 후 엑스에 ‘G2’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의 닐 토머스 연구원은 3일(현지시간) AP통신에 “G2라는 개념은 중국과 미국이 세계무대에서 대등한 위치에 있으며 그 입장이 동등하게 존중돼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용어의 의미를 외교적 맥락을 넘어 이해하려면 중국의 과거를 살펴봐야 한다.

20세기 초, 공산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중국은 서방의 ‘봉쇄’ 시도에 반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봉쇄정책’은 중국 정부가 자신을 억제하려는 제도적 전략이라고 여겼던 개념이 됐다. 2000년대 초반 중국 외교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세계 질서의 ‘축’을 뒤집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오늘날까지도 중국의 대표적 정책인 ‘일대일로’ 구상은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과거 ‘봉쇄’로 불렸던 서방 전략에 대응하려는 목적을 띤다.

더 디플로맷에 따르면 ‘G2’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경제학자 C. 프레드 버그스텐과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당시 미국과 유럽이 위기에 빠지자 유일하게 자금 여력이 있던 중국이 글로벌 경제를 구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중국은 이 개념을 즉각 거부했다. 당시 원자바오 총리는 “세계 문제를 중국과 미국 두 나라가 해결한다는 생각은 근거 없고 잘못된 발상이다. 다극화와 다자주의가 인류의 뜻”이라며 선을 그었다. 미국 역시 중국을 ‘공동관리자’로 격상시키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냉담했다.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전략을 벗어난 시 주석은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제안하며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며 세계 질서를 안정시키자”고 제안했다. 사실상 중국식 G2 모델이었다.

하지만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responsible stakeholder)’라는 표현을 선호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미중 관계는 트럼프 1기와 조 바이든 정부를 거치며 더욱 경직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다시 ‘G2’를 언급한 것은 그런 냉각의 끝에서 나온 정치적 전환으로 평가된다. 상하이 화동사범대학교의 정치학자 조지프 그레고리 마허니 교수는 튀르키예 국영 TRT 월드에 “이는 트럼프가 지금 가진 세계관을 보여준다”며 “그는 많은 나라들과의 관계를 깨뜨린 뒤에도 중국만은 꺾지 못했다. 어쩌면 오직 중국만이 미국과 맞붙어 자기 입지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처럼 G2라는 용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두 나라가 세계무대에서 ‘동등한 힘의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를 띠게 됐다. 이는 지역 강국에서 글로벌 핵심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오래도록 열망해온 위치였다.

중국의 평론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G2’ 언급을 즉각 받아들였고 다소 승리감에 찬 반응을 보였다. AP통신에 따르면 중국 내 대표적 민족주의 성향의 블로거 ‘후샤웨이광’은 “트럼프의 G2는 어느 정도 미국이 더 이상 단극적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중국과 양극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라며 “이는 유럽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일본이나 인도는 말할 것도 없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양국이 새로운 G2 그룹 창설을 추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양국은 주요국으로서 공동의 책임을 질 수 있다”며 “중국은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평등하고 질서 있는 다극 세계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동맹국들은 달갑지 않다. 미라 랩후퍼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 담당 국장은 “이 개념은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 인기를 끌었다”며 “양국이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관계로 정의돼야 한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이 개념을 적극 수용했지만 미국은 곧 이를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이 다른 동맹국들의 참여 없이 세계 주요 결정을 내린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개념은 일본, 호주, 인도 같은 나라들에서 매우 나쁘게 받아들여졌다”며 “이들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의 입맛에 맞춰가며 자국 이익을 희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부장관(현 아시아그룹 회장)도 “아시아에는 실제 G2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불안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두 나라가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는 문제뿐 아니라, 중국이 이 개념을 이용해 주변국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캠벨 전 부장관은 “이 개념은 이미 강하게 정당성을 상실한 용어가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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