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우리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현 정권을 만든 주역이 제1야당의 ‘절대적 전권’을 쥔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을 뿐더러 선대위원장까지 꿰찼으니 말이다. 혹자는 당내 주류인 ‘친노 패권세력’의 ‘얼굴마담’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하지만 그 사실여부와 무관하게 이런 사례 자체가 없었으니 충격적인 일만은 사실이다. 최근의 김종인 위원장 행보를 좋게 보면 거침이 없어 보이지만 부정적으로는 수치스럽고 굴욕감마저 떨칠 수가 없다. 60년 민주헌정사를 이끌어 왔다고 자부하던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다운 행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내 분위기는 대체로 조용하다. ‘만년야당’의 체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들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김종인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체성은 어울릴 수가 없다.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이 어울리고 있다면 어느 한 쪽이 변절했거나 투항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정치쇼’를 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김종인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광주의 피’를 바치고 그 위에서 민주주의를 이끌어왔던 정당이 그 피의 주범 편에 섰던 사람을 당 대표로 모셔왔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개의치 않고 있다. 여느 때 같았으면 거품을 물고 성토했을 그들이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눈앞에 ‘떡’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 알량한 떡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눈물을 흘렸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 그 떡은 태산보다 클 것이기 때문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설 연휴 때 전방부대를 시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언젠가는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뭉개버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흡수통일론’에 다가선 발언이다. 그럼에도 당내 분위기는 일부 표현을 수정하는 정도 외에는 조용하다. ‘우리 편’이기 때문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내지 않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내 편’과 ‘네 편’을 정확히 갈라내는 그들의 동물적 정치 감각과 분열주의적 언동, 이 또한 만년야당의 체질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종인 위원장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도 한마디 했다. 설 연휴 때는 가끔 만나는 지인들끼리도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은 달랐다. 안철수 대표를 향해 경제도 모르고 정직하지도 않다며 안 대표와 얘기를 해봐서 그 수준을 안다는 식의 폄하성 발언까지 쏟아냈다. 정말 이런 수준, 이런 품격의 소유자가 더불어민주당의 전권을 쥐고 있다니 놀랄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들은 또 조용하다. 그렇다면 그 밑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침묵하고, ‘공천 떡’에 눈먼 자들은 무엇인가. 정말 부끄럽다 못해 굴욕감까지 밀려드는 정초의 시린 새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