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감히 형한테 어디 소리를 지르느냐.”
추석 제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형제의 말다툼은 결국 경찰서까지 이어졌다. 술기운에 격해진 감정이었지만 뿌리에는 ‘부모님 제사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자리했다. 동생 이씨는 “형을 신고하려던 건 아니다. 다만 ‘부모님 제사를 그런 식으로 대충 지낼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고 했다.
추석 명절은 본래 조상을 기리고 가족의 화합을 다지는 자리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종교·다문화 구조 속에서 제사 방식을 두고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곤 한다. 종교마다 제사의 기원과 의례 방식이 다른 것도 한 원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제사, 그 의미와 종교별 차이는 무엇일까.
◆유교, ‘효’로 이어진 제사 전통
유교의 제사는 고려 말 중국에서 들어왔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근간으로 삼았고 사대부 사회는 가묘(家廟)를 설치해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왕실은 ‘국조오례의’를 기준으로 삼았고, 민간은 ‘가례’를 따랐다.
하지만 조선 초에는 불교 의례의 영향력이 강해 유교식 제사가 쉽게 퍼지지 못했다. 성리학이 사회 전반을 지배한 16세기 중엽부터 양반 사대부 사회를 중심으로 ‘가례’가 확산되면서 비로소 제사가 뿌리를 내렸다. 이때부터 4대 조상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자리 잡았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양반 질서가 무너지고 서양 종교가 들어오면서 유교식 제사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가정 제사는 여전히 유교의 틀을 따르고 있다. 이는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릴 만큼 ‘효’를 중시한 전통과 맞닿아 있다. 부모와 조상이 베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제사라는 의례를 통해 실천해온 것이다.

◆불교, 아귀 제사에서 중생 제사로
불교 본래 교리에는 제사가 없다. 부처는 제물 제의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가 고대 인도로부터 중국·한국으로 전래되는 과정에서 고대 인도의 조령제(祖靈祭)를 받아들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굶주린 아귀에게 음식을 베푸는 ‘시아귀회(施餓鬼會)’다.
고려시대에는 49재, 천도재가 활발히 열렸고 사찰과 궁궐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한 의례가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국가 이념이 되면서 스님이 주관하는 제사를 금지했지만, 불교식 ‘재’는 민간 신앙으로 남아 가정과 지역 사회에서 이어졌다.
오늘날에도 불교는 우란분재, 수륙재, 영산재 등을 통해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불교 제사의 특징은 대상을 확장한다는 점이다. 단지 조상만이 아니라, 떠도는 혼령과 지옥 중생까지 함께 의례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불교 특유의 ‘회향(回向)’ 정신, 즉 개인이 쌓은 공덕을 모든 존재에게 돌린다는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기독교, 제사에서 예배로
기독교에서 제사의 기원은 성경의 역사에서 확인된다. 아담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이 각각 땅의 소산과 양의 첫 새끼를 신 여호와(하나님)께 제물로 드린 것이 바로 성경 속 첫 제사의 시작이다. 농사하는 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았고, 양 치는 자 아벨은 신에게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린다. 이는 불교나 유교 등의 제사보다 약 3500년 이상 앞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역사학이나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설명하는 제사의 유래는 모세 때에 정착됐다. 약 3500년 전 모세는 하나님이 보여준 하늘의 법도에 따라 제사법을 세우고 하나님께 제를 올렸다. 이스라엘 민족은 번제·소제·화목제·속죄제·속건제 등 다양한 제사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확인했다. 제사란 곧 인간의 죄를 대신해 희생 제물을 바침으로써 용서를 구하는 의례였던 것이다. 지금도 유대교에서는 이 전통을 따라 양이나 소, 비둘기 등을 잡아 제물을 올리는 의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기점으로 제사의 의미가 달라진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단 한 번의 완전한 제사’를 드렸다고 기독교는 해석한다. 더 이상 동물을 잡아 바치는 구약의 제사법이 개혁돼 대신 오늘날 기독교에서 드리는 예배 문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천주교(가톨릭)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정한 성찬식을 그대로 계승했다. 떡과 포도주를 통해 예수의 살과 피를 기념하며 매 미사 때마다 신자들은 그 희생을 되새긴다. 예배 그 자체가 성찬식으로 완성되는 구조다.
반면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 성찬식을 절기나 특별한 예식으로 한정하고 말씀 선포와 공동체 예배를 강조한다. 말씀 중심의 예배가 제사의 정신을 계승한 셈이다.
오늘날 기독교에도 조상을 기리는 의례는 존재한다. 천주교의 ‘합동 위령미사’, 개신교의 ‘추도예배’가 대표적이다. 이는 조상의 영혼이 하나님께 인도돼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의식으로,불교의 천도재나 유교의 제사와 그 뜻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인 일부는 여전히 제사를 치르는 행위나 제사음식을 거부하면서 다른 종교인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또한 기독교인들이 제사예법을 잘 알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을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이야기한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여 죄를 사하는 일을 한다는 말씀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