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내적세계 ‘화선지’에 그려
한국화, 존재 본질 탐구하는 예술
“묵색만으로 그려낸 철학을 반영”
우연·사색 중심 창작활동에 접근
“예술, 자연·인간 조화 세상 만들어”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전남 담양 원도심의 담주다미담예술구 고즈넉한 골목길에 자리한 갤러리 ‘명고재’에서는 자연의 숨결과 인간의 내면을 화선지 위에 담아내는 홍정순 한국화 작가의 작품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그는 먹빛이 번져가는 여백 속에서 삶의 흔적을 그려내며 예술과 공간을 함께 열어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본지와 인터뷰 하는 홍 작가 ⓒ천지일보 2025.10.02.](https://cdn.newscj.com/news/photo/202510/3324617_3403261_936.jpg)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전남 담양 원도심의 담주다미담예술구 고즈넉한 골목길에 자리한 갤러리 ‘명고재’에서는 자연의 숨결과 인간의 내면을 화선지 위에 담아내는 홍정순 한국화 작가의 작품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그는 먹빛이 번져가는 여백 속에서 삶의 흔적을 그려내며 예술과 공간을 함께 열어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홍 작가는 한국화를 단순한 기법이 아닌 “삶 그 자체”라고 정의한다. 먹과 붓을 통해 바람, 물, 나무, 계절의 흐름 등 자연의 요소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곧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제 삶의 궤적을 그려내는 길”이라며 한국화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임을 강조했다.
그가 추구하는 한국화의 본질은 동양의 정신성과 철학에 있다. 여백의 미와 정신적 깊이의 드러냄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의 의식과 무의식을 탐색하며 삶의 방향성과 존재의 가치를 설계하는 예술로서 한국화를 바라본다. 특히 ‘청아유현(淸雅幽玄)’이라는 주제를 통해 맑고 우아한 정신성과 깊은 사색의 경지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복잡하고 번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마음을 정화하고 본질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자연과 사색, 그리고 묵색의 철학
홍 작가의 작품에는 섬진강의 새벽 전경과 그믐달의 고요함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섬진강의 안개 낀 아침을 단순한 장면이 아닌 생명력과 희망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어둠에 잠겨 있던 시기 그는 섬진강에서 침묵과 마주하며 내적 절제와 사색을 깊이 있게 드러냈다.
작업의 핵심 색채인 묵색(墨色)은 그에게 있어 시각적 요소를 넘어선 정신적 상징이다. 농묵, 중묵, 담묵으로 표현되는 묵색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음양의 조화를 담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본질과 근원을 드러내는 색이다. 그는 “화려한 색을 배제하고 오직 묵색만으로 그려낸 그림은 깊은 사유와 철학을 반영하며 고요함 속에 생명력을 품은 울림을 전한다”고 설명했다.
◆창작의 흐름, 발묵과 사유의 여정
홍 작가는 창작 활동에서도 우연성과 사색을 중시한다. 그는 “작품을 구상할 때 완벽한 계획보다는 발묵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태를 잡아가며 감정과 사유가 하나로 응축될 때 마지막 가필을 통해 완성한다”고 말한다. 먹을 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그의 작업은 자연의 잔상과 감각을 추상적 형태로 풀어내는 여정이다.
최근에는 지역 작가들과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담양의 영산강 전경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는 “구불구불 흐르는 강줄기와 논밭, 마을의 고요한 모습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써 내려가는 서사처럼 다가왔다”고 회상한다. 그 경험은 창작물 속에 시간과 삶의흐름을 담아내는 계기가 됐으며 담양이라는 지역이 단순한 지명이 아닌 창작의 원천으로 자리잡게 했다.
코로나19 비대면 시대의 긴장감과 낯섦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백로의 균형감각에서 비움과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는 그의 작업 속 절제된 묘사와 깊은 여운으로 이어진다.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전남 담양 원도심의 담주다미담예술구 고즈넉한 골목길에 자리한 갤러리 ‘명고재’에서는 자연의 숨결과 인간의 내면을 화선지 위에 담아내는 홍정순 한국화 작가의 작품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그는 먹빛이 번져가는 여백 속에서 삶의 흔적을 그려내며 예술과 공간을 함께 열어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본지와 인터뷰 하는 홍 작가 ⓒ천지일보 2025.10.02.](https://cdn.newscj.com/news/photo/202510/3324617_3403272_2745.jpg)
◆담양다미담예술구 갤러리 ‘명고재’ 운영
홍 작가는 현재 담양 다미담예술구에 위치한 갤러리 ‘명고재’를 운영하며 지역 예술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명고재’는 ‘밝은 달을 바라보며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전시 장소를 넘어 예술가와 시민이 소통하는 열린 장으로 기능한다.
그는 “작업실에 머물러 그림만 그릴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며 “명고재는 제 작품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 작가들과 시민이 만나는 예술의 마당”이라고 말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는 ‘영산강은 나로부터 흐른다’를 꼽으며 담양이라는 지역이 유유자적한 삶의 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창작의 원천임을 강조했다.
갤러리 명고재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체험 활동도 마련돼 있다. 한국화 그리기 체험 등 일상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삶 속으로 스며드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실천
홍 작가는 예술가로서뿐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담양군여성회관에서 한국화를 지도하고 있으며 담양교육지원청과 협력해 지역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청죽의 향기 품은 담양생태아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나무를 소재로 생태적 의미를 탐구하고 먹물의 농담과 필법을 통해 전통 한국화의 정신을 전달하며 아이들에게 협동심과 공감 능력, 정체성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예술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교육의 가치를 전했다.
홍 작가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발전돼야 할 살아있는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만의 언어로 자기 세계를 탐구하고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외롭고 고된 여정일지라도 그 자체가 예술가로성장하는 길임을 믿는다.
앞으로 그는 담주다미담예술구의 거리 활성화를 위한 역할을 고민하고 있으며 시조 시인으로의 등단을 앞두고 있다. 첫 시조집 출판을 기념해 전시공간에서 한국화와 시조를 결합한 문화행사를 기획 중이다. 단순한 출판기념회를 넘어 전통 회화와 문학이 어우러지는 복합 예술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예술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언어이며 바쁜 현대인들이 잠시 멈춰 서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한다. 홍 작가의 묵색의 고요함 속에서 피어난 그의 청아한 세계는 예술을 통해 삶을 정화하고 공동체를 잇는 깊고 단단한 울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