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추석을 앞두고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이 이뤄지고 있다. 지역사랑 상품권, 신용카드, 체크카드, 선불카드 등 4가지 수단을 통해 지급되는 소비쿠폰으로 인해 경기가 다소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단기 부양책만으로 구조적 침체에 빠진 민생경제가 살아날 수는 없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재정을 경제 성장과 경기 회복의 마중물로 삼으려는 원칙을 세웠다. 이런 마중물의 하나로 지역사랑 상품권(지역 화폐) 발행 지원 예산을 1조 1500억원 편성했는데, 포퓰리즘성 복지 시책처럼 삼아서는 안 된다. 시민성, 공공성을 본질로 삼지 않고 지역 화폐를 소비 촉진의 도구로만 여기면 기대효과는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엊그제 한 언론사 주최로 제주도의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지역 화폐를 지역 순환 경제의 동력으로 삼아보자는 논의가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극심한 침체를 겪는 제주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지역에서 창출된 부가 환원되지 않고 외부로 빠져나가는 게 큰 문제다. 제주 경제의 취약한 구조를 ‘구멍 난 양동이’라고 일컫는다.”
연간 1300만명 넘는 관광객이 찾는 제주에서 여행사, 호텔, 렌터카 업계가 성황을 이루고 있으나 대개 본사를 서울 등 외지에 두고 있다. 일자리 창출 효과는 있겠지만 지역 경제를 떠받치며 재투자할 수익금 중 60~70% 정도가 외부로 유출돼 선순환 경제구조를 이루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호소한다. 제주 경제를 큰 양동이로 비유하자면 양동이 곳곳에 뚫린 구멍으로 개발이익, 기업수익이 줄줄 새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사실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 지자체가 양동이 구멍을 때우지 않고 계속 물만 퍼부으려 한다. 개발과 자본 유치 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든 곳이 희박하다. 지역 소득의 역외유출, 지역기업 조달력의 역외유출, 지역인재 유출이 심한데도 이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일단 제주 양동이에 난 구멍 땜질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지역 화폐의 위력을 추적해 오고 있기에 ‘제주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지역 화폐는 당초 전통시장,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지류형 지역사랑 상품권으로 출발했다. 2018년 인천에서 전국 처음으로 카드형과 모바일형 결합의 전자식 지역 화폐를 선보였다. 선불 결제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충전식 선불카드를 발급하면서 사용자에게 구매가의 10%를 현금으로 적립해 주는 ‘캐시백’ 혜택을 주자 출시 직후부터 인기 폭발이었다.
특히 인천 서구가 1년 안에 지역 주민의 90% 가입 실적에 이어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최단기 최고 발행액 달성 등으로 지역 화폐 돌풍을 일으켰다. 전국 지자체가 너도나도 전자식 지역 화폐(카드와 모바일 형)를 도입하면서 가입자가 지역 전체 인구의 50% 이상 넘어서는 곳도 속속 생겨났다. 코로나19 기간 정책자금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기도 해 가입자가 급격히 늘었다.
지역 화폐 충전액(또는 사용액)의 5~10%씩 할인(또는 적립)해 주는 재원을 국고와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효용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예산 낭비 우려가 제기됐으나 현장에서는 “지역 화폐 발행으로 지역 상권의 매출 증가에 따른 고용 증대, 지역 생산 유발, 역외 소비유출 감소 효과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단순 결제를 넘어 지역 화폐 플랫폼을 통해 배달 앱, 온라인 쇼핑몰, 택시 호출, 취약계층 나눔 앱, 전통시장 온라인 장보기, 탄소 제로 앱, 정책 설문‧투표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가 꾸준히 개발됐다.
지역 화폐에서의 배달, 택시 호출 등은 공공서비스이기에 수수료나 광고료가 무료이거나 미미한 수준이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를 지역 맞춤형으로 개발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과다한 잇속만 챙기는 민간 앱의 독과점 폐해를 견제하는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이런 성과에도 지역 화폐를 공유재 성격이 강한 플랫폼으로 ‘퀀텀 점프’ 시키지 못한 채 지역사랑 상품권 ‘시즌 2’ 범주에서 맴돌고 있다.
제주 토론회는 이런 답답함을 해소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발제자인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지역 화폐가 요동치는데, 일본의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를 국가 고유사무로 확정해 관련 재정을 안정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