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처럼 둘러선 2140㏊ 숲
울창한 숲에서 뿜는 피톤치드
명상·맨발 산책 등 오감 자극
HRV 측정 등 치유 효과 확인
맨발 걷는 ‘구부 능선’ 자갈길
가족·동호회 체류 힐링 명소

[천지일보 양평=김정자 기자] 깊은 숲과 맑은 계곡을 품은 산의 그늘에서 사람들은 회복의 길을 찾는다. ‘체험형 치유’를 앞세운 산음자연휴양림은 숲이 곧 교실이자 약이 되는 공간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퍼지는 꽃향기와 나무 내음은 이미 치유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본지는 최근 현장을 찾아 숲 해설과 복식호흡, 해먹 명상, HRV(심박변이도) 측정 등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하며 산음이 전하는 회복의 힘을 확인했다.
숲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바로 ‘산의 그늘’이다. 울창한 숲의 바람과 피톤치드 향기가 방문객에게 치유를 선물한다. 2000년 1월 1일 개장한 휴양림의 총면적은 2140㏊에 달한다. 봉우리는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아홉 갈래 계곡은 사계절 내내 마르지 않는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낙엽송·소나무·잣나무·자작나무·상수리나무·가래나무·피나무·물박달나무·층층나무 등 침엽수와 활엽수가 고르게 분포해 봄엔 꽃, 여름엔 계곡, 가을엔 단풍으로 발길을 붙잡는다.
산림청 지정 1호 ‘산음 치유의 숲’에는 3~11월 산림치유지도사가 상주하며 숲속 체조, 오감 산책, 맨발 걷기, 명상 등 대상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산림치유는 숲의 향기·경관·온습도·음이온·피톤치드 등을 활용해 면역력과 신체·정신 건강을 높이는 활동이다.

◆걸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치유
치유 여정은 ‘걷기’에서 시작한다. 완만한 숲길을 따라 트래킹하며 호흡을 교정해 산소 섭취를 높인다. 권용철 치유사는 “오른손은 가슴, 왼손은 배에 두고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쉰다. 오른손이 움직이지 않으면 복식호흡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안내했다. 해먹 명상은 숲속 해먹에 누워 음악과 시 낭송을 들으며 약 20분 동안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내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구불구불한 ‘구부 능선’ 자갈길을 맨발로 걸으며 계곡의 한기를 피부로 느끼는 과정도 이색적이었다.
산음의 특징은 감성과 데이터를 동시에 중시한다는 점이다. 권 치유사는 “숲에 들어오기 전과 1~2시간 활동 후를 비교하면 참가자가 몸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프로그램에서는 HRV 측정을 통해 스트레스 지표 변화를 확인한다. 체성분 분석기 등 장비도 있었지만 ‘자연이 최고의 치유사’라는 철학에 따라 점차 비중을 줄여왔다.
또한 숲해설가·유아숲지도사·산림치유사 등 전문 인력이 활동하며 나무·풀·곤충을 배우는 수업은 ‘보이는 숲’을 ‘배우는 숲’으로 바꿔놓는다. 구상나무와 누리장나무, 도토리거위벌레 같은 생태 해설은 참가자들에게 과학적 이해와 감성을 함께 전했다.

◆숙박·체험·지역 관광으로 확장
산음의 경쟁력은 살아 있는 계곡물이다. 깊은 산세에서 내려오는 물은 한여름에도 손목이 시릴 정도로 차다. 바위틈을 스치는 물소리와 습윤한 공기는 즉각적인 쿨링을 선사해 ‘자연산 냉풍기’라 불린다. 물가에서는 복식호흡과 어깨 두드리기 같은 간단한 자극법이 병행돼 도시에서는 접하기 힘든 체험이 된다.
체류형 방문이 어울리는 숲이지만 성수기 숙박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어렵다. 당일형 프로그램은 비교적 수월하며 숙소 내 취사도 가능하지만 도시락을 선호하는 방문객이 많다. 주변 순두부 식당은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은다. 가족·동호회·직장인 등 다양한 수요층이 찾으며 치유 워크숍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무목걸이 만들기, 개구리 만들기, 꽃누르미 부채 만들기 같은 체험프로그램은 탄소중립과 숲 관리의 중요성까지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휴양림은 양평의 관광벨트와 연계될 때 더 큰 효과를 낸다. 두물머리·세미원·용문산과 연결한 1박 2일 코스는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연꽃철 세미원은 산음의 숲 체험과 잘 어울리고 고로쇠축제·산수유·개군한우축제·은행나무축제 등 지역 행사와도 연계된다. 휴양림–지역축제–로컬푸드–관광지로 이어지는 체류형 소비 구조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동력이 된다.

◆산음이 전하는 ‘느리게 걷는 법’
산음은 단순한 휴양지를 넘어 ‘사유의 장’이다. 숲속 대화는 과학을 넘어 철학으로 확장된다. 참가자들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성경·도덕경을 언급하며 “자연 속에서 고전을 읽으면 달리 보인다”는 감흥을 나눴다. 이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숲이자 배움과 신앙·철학이 만나는 자리다. 숲 한가운데서 책을 읽는 장면도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운영 철학 또한 ‘시설’보다 ‘자연’이다. 과거에는 찜질·원적외선 장비 같은 실내 치유시설도 설치돼 있었지만 지금은 숲 해설·호흡·걷기·명상·촉각 자극 등 체험의 농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안전을 위해 계곡 접근 시에는 미끄럼 주의, 지정 탐방로 준수, 가벼운 지팡이 사용 등을 안내했다.

산음자연휴양림은 오늘도 ‘느리게 걷는 법’을 가르친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오래 내쉬는 일, 계곡 물가에서 바람을 맞는 일, 이름 모를 곤충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사소하지만 확실한 회복을 선사한다. 한 참가자는 “여긴 진짜 확실하게 힐링이 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산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치유의 교실이다. 자연을 믿는 운영 철학과 지역 상생, 데이터로 확인하는 회복의 고리가 맞물릴 때 산음은 ‘삶의 속도를 낮추는 기술’을 가르치는 숲이 된다.
체험을 마친 뒤에는 근교 식당으로 향했다. 차량으로 10분 남짓 이동하면 탁 트인 계곡과 넓은 텃밭을 자랑하는 식당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시골 된장과 텃밭에서 막 따온 아삭한 고추가 식탁에 올라 구수한 향과 특별한 맛을 더한다. 여기에 고소한 감자전과 능이버섯 백숙이 곁들여지면 몸과 마음이 따뜻하게 풀리며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번진다. 자연과 어우러진 한 끼 식사는 여행의 여운을 더욱 깊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