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영 유튜브 ‘청농대학’ 대표 / 경제학 박사

어느 생물체가 과도하게 밀집되면 먹이경쟁의 심화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 공간부족 갈등으로 인한 공격성과 무기력성이 동시에 늘어나고 이로 인한 번식률 감소와 사망률의 증가 등으로 점차 소멸해 간다는 대표적인 실험 사례는 1968년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존 B. 캘훈(John B. Calhoun)이 실행한 ‘쥐 유토피아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실험용 쥐에게 무한한 먹이와 물, 위생과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되 단지 하나의 변수인 공간과 밀도를 실험·통제하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하다가 일정 시점 이후에는 개체 수의 증가가 둔화하고 밀집현상이 극한점에 달하면 개체들이 결국 무기력해지면서 개체수는 감소하다가 전멸하게 된다는 실험이었다. 

공교롭고 우리나라 수도권은 세계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이다. 2023년 기준 전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51%의 인구가 과다 밀집해 있어 수도권 집중도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 일본의 도쿄 광역권은 약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영국 런던권이 약 20%, 프랑스 파리권은 약 18%,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수도권이 12% 수준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GDP의 52.5%, 일자리의 58.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 이는 미국의 경제(GDP), 일자리 집중도가 각각 5.1%, 4.9% 수준인 점에 비춰 볼 때 미국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준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높은 수도권 집중도는 집값과 전셋값의 지속적인 급등과 ‘주거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치솟는 주거비 부담 탓에 대출이자를 내느라 소비 여력이 줄어 경기가 침체되고 가계부채 위험도 누증돼 결국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 이주한 청년들의 과도한 주거비용으로 인한 중압감과 절망감으로 결혼과 출산은 고사하고 본인 1인의 생존 자체도 벅찬 도시가 현재 서울의 모습이다. 

반면 지방은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의료·교육 인프라 등의 붕괴로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방은 청년이 유출돼 고령화와 지역소멸을 맞고 있는데 청년이 몰려든 서울 수도권은 과다한 혼잡으로 시너지를 내기는 커녕 OECD 국가 중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도시가 돼 지역유출분을 긍정적으로 상쇄하지도 못하고 있다. 

결국은 수도권 집중이 우리나라 저출산과 지역소멸 문제의 주된 원인인 것이다. 2024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0.55이고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5로서 OECD 국가(평균 1.36)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선진국 기준 출산율이 2.1 이상이 돼야 최소한 현재 수준의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므로 우리나라는 심각한 인구소멸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 간 불균형 문제는 지역분산을 통해서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부동산가격 급등의 문제를 단기적 시각으로 공급확대로 잡겠다며 신도시 개발에 박차를 가해 그린벨트나 평야를 훼손하면서 역설적으로 수도권 집중을 더 가속화해 왔다. 

지난 정권은 역시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지만 취임하자마자 ‘수도권 규제 완화’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신규 고용유발효과만 160만명에 이르고 향후 20년간 300조원의 민자가 투자될 것으로 추산되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수도권인 용인에다가 구축·허가해 수도권 집중도를 가중시켰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 전체 기초지자체의 절반 이상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어 지역불균형과 지방소멸은 더 이상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재난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광복 직후 아시아 최빈국이었고 문맹률은 78%에 달했던 끔찍한 상황에서도 부모 세대들의 뜨거운 교육열과 근면·성실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한국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은 ‘인적자본’이었다. 그러나 이제 인적자본 중심 성장의 뒤안길에서, 성장은 멈추고 국가 소멸을 걱정하는 나라가 돼 가고 있다. 인구 절벽과 저성장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 정치적 논쟁과 선거철만의 ‘말 잔치’가 아닌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진정성 있는 ‘실행’이 나타나야 할 때이다. 

국토 전체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국회는 ‘행정수도특별법’을 시급히 완성하고 정부는 수도권에만 집중된 주요 기능과 공공기관을 과감히 지방으로 이전함으로써 조화롭게 발전하는 선진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조상들이 피땀으로 지켜온 금수강산을 균형되고 조화롭게 발전시켜 미래 세대에게 물려 주자.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하기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