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ㆍ경계의 상징,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져

‘농경문청동기’에 새겨진 나뭇가지에 앉은 새

솟대와 민간신앙에 나타나는 신간(神竿) 표현

까마득한 옛날부터 한반도 곳곳에 세워진 ‘솟대’는 성역이나 경계의 상징 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솟대를 세워 자신들의 소망을 하늘에 기원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9.04.
까마득한 옛날부터 한반도 곳곳에 세워진 ‘솟대’는 성역이나 경계의 상징 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솟대를 세워 자신들의 소망을 하늘에 기원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9.04.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장대 위에 덩그마니 앉은 작은 새. 하늘을 향한 그리움일까. 사람을 향한 애틋함일까.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으면 마치 고요의 땅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조형물을 우리는 솟대라고 부른다.

‘솟아 있는 장대’로 불리는 솟대는 한국의 전통공예 중 하나로 청동기, 고조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민족의 종교 건축물이자 전통적인 조형물이다. 긴 나무막대기 위에 앉은 작은 새는 보통 오리로 인식하는데, 바로 이 작은 새가 사람과 하늘 곧 신을 이어준다고 믿었다.

함남 홍원 관내 문주의 목제수금장식 솟대. 일제강점기. 유리와 필름.(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5.09.04.
함남 홍원 관내 문주의 목제수금장식 솟대. 일제강점기. 유리와 필름.(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5.09.04.

◆ 오리, 하늘을 날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한반도 곳곳에 세워진 ‘솟대’는 성역이나 경계의 상징 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솟대를 세워 자신들의 소망을 하늘에 기원했다.

그 생김새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횃대에 앉은 새의 모습을 본 뜬 것으로 ‘솟다+막대’ 즉 ‘하늘 높이 솟은 막대’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보통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혔으며 목적에 따라 짐대ㆍ소줏대ㆍ표줏대ㆍ솔대ㆍ거릿대 등 여러 명칭이 있다. 그 형태도 다양해 가정이나 개인 신앙의 대상인 것에서 마을 또는 지역을 위한 것 등이 있으며, 일시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솟대에 앉은 새는 일반적으로 오리로 해석되는데, 이는 오리가 하늘을 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과 육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으로 고대인들은 오리를 하늘(신)과 땅(사람)과 물 속(용궁)까지 모두 오간다고 여겼다.

또한 오리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해주고 화마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며 홍수를 막아준다고 믿었다. ‘오리가 기침하면 비를 내려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렇듯 물새가 갖는 특징이 다양한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되면서 솟대, 더 정확히는 솟대 위 오리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보물 농경문청동기. 초기철기 시대. 방패형동기.(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5.09.04.
보물 농경문청동기. 초기철기 시대. 방패형동기.(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5.09.04.

◆ 하늘과 통하던 기둥

솟대는 삼한시대의 소도(蘇塗, 제의가 행해지는 신성 지역)의 유풍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고대문헌에서는 직접적으로 솟대라는 명칭이 나오진 않지만 하늘과의 교통을 상징하는 제의용 기둥 또는 신목(神木)의 존재는 꾸준히 언급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를 보면 솟대는 이미 선사시대에 현존해 있었음 알 수 있다.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농경문청동기’는 표면에 새겨진 문양을 통해 농경과 관련된 제의(祭儀)에서 사용된 의례용 도구로 여겨진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해당 문양 중 일부에 두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 끝에 각각 한 마리씩의 새가 앉아 있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학자들은 솟대를 한민족 고유의 하늘숭배 사상인 ‘천신 신앙’의 유물로 해석한다. 특히 북방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선주민 문화의 잔재로 보며, 하늘과 인간, 자연의 조화를 기원하는 도구였다고 분석한다.

세계유산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 앞의 장승과 솟대. 2014. (안동시 제공) ⓒ천지일보 2025.09.04.
세계유산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 앞의 장승과 솟대. 2014. (안동시 제공) ⓒ천지일보 2025.09.04.

솟대는 민간신앙의 상징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마다 정월대보름 즈음이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평안과 풍요, 질병 퇴치를 기원하며 솟대를 새로 깎아 세우고 제를 올리기도 했다.

솟대는 단순한 기원의 도구를 넘어서 마을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 제례의 중심이자 사회적 결속의 상징이었다. 제를 통해 마을 구성원들은 소속감을 확인하고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연대를 다졌다.

솟대는 세우는 목적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뉘기도 한다. 먼저 솟대는 보통 마을의 액운을 막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며 세우는데 이는 마을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배 모양(行舟形)을 띤 마을에는 비보(裨補) 차원에서 솟대를 세우기도 하며, 급제와 같은 개인의 경사를 기념해 세우는 경우도 있다.

솟대는 원래 마을 어귀나 당산나무 옆, 마을 제의가 열리는 장소, 혹은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장대(長臺) 형태의 나무 기둥이다. 홀로 우뚝 서 있기도 하고 장승이나 탑과 나란히 세워지기도 한다.

솟대 위에 놓인 새는 지역과 제작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는데 Y자형 나뭇가지나 기역(ㄱ)자형 가지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때로는 사실적인 새 모양으로 정교하게 깎아 만들기도 한다.

보통 오리 또는 기러기 형상의 새를 깎아 올려놓았고 기둥의 높이는 보통 수 미터에 이른다. 일반적으로는 나무로 제작되지만 쇠나 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솟대 위의 새는 한 마리에서 세 마리까지 다양하다. 지금도 전라도, 경상도 일대의 민속촌이나 마을제 행사에서 솟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솟대 위에 놓인 새는 지역과 제작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는데 Y자형 나뭇가지나 기역(ㄱ)자형 가지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때로는 사실적인 새 모양으로 정교하게 깎아 만들기도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9.04.
솟대 위에 놓인 새는 지역과 제작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는데 Y자형 나뭇가지나 기역(ㄱ)자형 가지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때로는 사실적인 새 모양으로 정교하게 깎아 만들기도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9.04.

◆ 솟대, 예술로 거듭나다

근대화 과정에서 솟대 문화는 점차 사라졌지만 1970년대 이후 민속문화 복원 움직임 속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무형문화재와 민속행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며 전통 제의와 함께 솟대를 복원하고 마을제 행사에 통합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관광지나 공공예술 조형물로서의 재해석도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충북 제천 금수산 자락에는 ‘솟대’를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전시 및 체험 공간인 ‘능강솟대문화공간’이 있다.

2005년 4월 개관한 이곳은 관장을 맡고 있는 윤영호씨와 조형연구실장이자 그의 둘째 아들인 현대미술 작가 태승씨, 기획실장을 맡은 큰아들 태석씨가 꾸려가고 있다. ‘솟대’에 푹 빠진 이들 삼부자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솟대문화의 현대적 계승과 세계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이곳을 찾았던 도올 김용옥은 ‘차세하유 경선경 소도개벽 신천지(此世何有 更仙境 蘇塗開闢 新天地)’ 즉 ‘세상 어디에 이런 선경이 있겠는가. 솟대를 세운 신성한 성지가 처음 열리니 이곳이야말로 신천지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한 해 수만 명이 찾는 솟대의 성지 역할을 하고 있다.

솟대에 앉은 새는 일반적으로 오리로 해석되는데, 이는 오리가 하늘을 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과 육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으로 고대인들은 오리를 하늘(신)과 땅(사람)과 물 속(용궁)까지 모두 오간다고 여겼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9.04.
솟대에 앉은 새는 일반적으로 오리로 해석되는데, 이는 오리가 하늘을 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과 육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으로 고대인들은 오리를 하늘(신)과 땅(사람)과 물 속(용궁)까지 모두 오간다고 여겼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9.04.

‘솟대 명장’ 윤정귀 작가는 “희망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솟대가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우리의 전통 미술”이라고 말한다. 윤 작가는 대한민국솟대작가협회를 만들어 여러 지역의 솟대 작가들과 소통하고 전시도 함께하면서 솟대 홍보에 힘쓰고 있다.

전통명장협의회 솟대 명장 1호인 경북 문경의 심재연 명장은 사다리 솟대, 몬드리안 솟대, 도자기 솟대 등 전통과 조형화의 사이에서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꾸준히 고민하고 연구하는 인물이다.

심재연 명장은 말한다. “굳이 하늘 높이가 아니더라도 방안의 책상 위나 문갑 위에라도 솟대를 세우고 나면 로또복권을 소지한 동안의 기대와 희망 같은 것이 가슴 깊이 안겨들 것이다. 솟대가 있는 세상은 꿈이 있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에게는 미신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소망을 담아 하늘에 띄우는 메신저였을 솟대. 나라 안팎으로 아직은 어수선한 이때, 저마다의 가슴 속에 작은 ‘솟대’ 하나를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소망과 희망을 아로새긴 작은 솟대들이 모여,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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