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무궁화 관계자 “입법하는 의원들 책상 위에 올려드리고 싶었다”
22대 무궁화 국화법 발의 ‘0건’… 21년째 번번이 무산된 입법 시도
정부 “품종 많다” 난색… 산림청 “지정 가능한 권장 품종 있다” 반박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광복 80주년, 안동무궁화가 국회에 피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14일 국회 소통관 앞에 설치된 홍보 부스에서 안동무궁화 화분이 전시돼 있다. 이날 시민과 방문객들에게는 실내용으로 적합한 소형 안동무궁화가 기념품으로 증정됐다. 이날 기증받은 안동무궁화꽃은 15일 오전 꽃을 피웠다. ⓒ천지일보 2025.08.17.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광복 80주년, 안동무궁화가 국회에 피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14일 국회 소통관 앞에 설치된 홍보 부스에서 안동무궁화 화분이 전시돼 있다. 이날 시민과 방문객들에게는 실내용으로 적합한 소형 안동무궁화가 기념품으로 증정됐다. 이날 기증받은 안동무궁화꽃은 15일 오전 꽃을 피웠다. ⓒ천지일보 2025.08.17.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전국 곳곳에서 무궁화 꽃이 만개하며 나라꽃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무궁화는 ‘법정 국화’가 아니다. 지난 2002년부터 2021년까지 11차례 국회에서 국화로 지정하려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되거나 계류됐다. 정치권과 정부는 왜 무궁화를 ‘국화’로 지정하지 못했을까.

광복 8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국회 앞마당에선 무궁화꽃이 만개한 가운데 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는 이날 ‘VIDAK 2025: [815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이름으로 국제교류전을 개최했다. 광복회와 함께한 이번 전시는 ‘대한이 살았다’ 주제의 전야제와 무궁화꽃 나눔 행사로 이어졌고 행사 종료 후에는 전시작품을 광복회에 기증했다.

“동양평화론을 디자인하다” 광복 80주년 기념 국제교류전에 전시된 황만석 작가의 포스터. 하얼빈 의거의 주인공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담은 손 조형물 디자인과 함께 동양평화론의 메시지를 시각화했다. (출처: 아태경제저널) ⓒ천지일보 2025.08.17.
“동양평화론을 디자인하다” 광복 80주년 기념 국제교류전에 전시된 황만석 작가의 포스터. 하얼빈 의거의 주인공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담은 손 조형물 디자인과 함께 동양평화론의 메시지를 시각화했다. (출처: 아태경제저널) ⓒ천지일보 2025.08.17.

◆“의원님 책상 위에 무궁화를 올려드리고 싶었다”

본지 기자는 이날 국회 소통관 앞에서 광복절 전야제 행사장에서 무궁화 국화법 입법운동을 이어가는 시민사회 관계자를 만났다. 
안동무궁화 홍보 관계자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노력해서 국화법을 제정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봄철 윤중로에서 ‘벚꽃 축제’를 하는데, 저희는 정말 아쉬운 게 ‘아, 윤중로 무궁화 축제가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고 토로했다.

이어 “벚꽃은 ‘사쿠라’라는 표현을 쓰고 일본꽃의 상징인데 벚꽃 축제에는 열성인 반면 정작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 축제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이 무궁화 단체 회원으로서는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초중고 학생들을 포함해 국민과 교육 관계자들에게 무궁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광복 8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국회 소통관 앞 홍보 부스에서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안동무궁화와 홍보 책자를 전달받고 있다. 행사 관계자는 “입법 책상 위에 무궁화를 올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2025.08.17.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광복 8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국회 소통관 앞 홍보 부스에서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안동무궁화와 홍보 책자를 전달받고 있다. 행사 관계자는 “입법 책상 위에 무궁화를 올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2025.08.17.

그는 무궁화가 좀더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입법하는 국회의원들 책상 위에 무궁화를 올려드리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의원실 보좌관들과 비서관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입법 관계자들과 더불어 무궁화에 대한 관심이 더 증대될 수 있는 법도 만들고 좋은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행사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무궁화는 수천 년 전부터 한국인의 삶과 정신 속에 뿌리내린 상징적인 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미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불렸으며,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독립운동가들은 무궁화를 통해 민족정신을 드러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애국가의 첫 구절처럼 무궁화는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광복 80년에도 ‘국화 아닌 국화’… 22대 국회 발의 ‘0건’

이러한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무궁화는 법적으로 국화로 지정된 적이 없다. 지난 2002년부터 2021년까지 총 11건의 무궁화 국화법이 발의됐지만 단 한 건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특히 22대 국회에서는 단 한 건의 법안 발의도 없었다.

법제화가 번번이 무산된 배경에는 정부 부처의 난색이 있었다. 과거 행정안전부는 “해외 사례를 봐도 국화를 법으로 지정하는 경우는 드물고 무궁화는 품종이 200여 종에 달해 어떤 것을 지정할지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해왔다.

무궁화는 영국의 장미, 프랑스의 백합, 네덜란드의 튤립처럼 오랜 역사와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신라 효공왕이 당나라에 보낸 문서에 ‘근화향(槿花鄕)’이라 표현할 만큼, 무궁화는 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대변해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상징이 됐고 광복 이후에는 정부 수립 기념 초청장 배경, 화폐, 공무원 임명장, 국회의원 배지, 법관의 법복 등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무한히 피어나는 꽃’이라는 의미의 무궁화는 캐러멜, 사이다, 소주 등 고급 브랜드명으로도 쓰였고 한때 호텔 등급 표시에도 활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국화’가 아니다. 무궁화를 국화로 지정하려는 법안은 반복적으로 발의됐지만, 외래종 논란, 품종 다양성, 입법 불필요론 등에 밀려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 같은 허점을 인식한 어린이와 시민단체가 주도한 서명운동으로 지난 2007년 8월 8일 ‘무궁화의 날’이 비공식 제정됐지만 여전히 법적 효력은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꽃이면서도 법률로 국화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안동무궁화, 너는 누구인가?” 홍보 부스에서 소개된 무궁화 자료집과 실물 화분. ‘안동무궁화’는 키가 작고 실내용 재배에 적합해 시민들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한 화분으로 제작됐다. ⓒ천지일보 2025.08.17.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안동무궁화, 너는 누구인가?” 홍보 부스에서 소개된 무궁화 자료집과 실물 화분. ‘안동무궁화’는 키가 작고 실내용 재배에 적합해 시민들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한 화분으로 제작됐다. 사진은 관계자가 본지 기자에게 안동무궁화에 대해 자료집을 열어 설명하는 모습. ⓒ천지일보 2025.08.17.

◆시민들조차 모르는 ‘나라꽃’… 현실은 ‘시들해진 인기’

지난 2022년 산림청이 실시한 꽃나무 선호도 조사에서 무궁화는 8위에 그쳤다. 지난 2006년 3위였던 순위에서 5계단 하락한 결과다. 무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로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응답이 54%에 달했다. 실제로 전국 31개 경기도 시·군 가운데 무궁화 동산이나 공원이 있는 지자체는 21곳뿐이다.

일본도 벚꽃을 법적으로 국가 상징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중앙정부·지자체·민간이 체계적으로 관련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사쿠라회라는 초당적 조직은 식목사업, 미인 선발대회, 해외 벚꽃 보급 등 전 세계 63개국에 벚나무를 심으며 ‘꽃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무궁화의 법제화는 단지 꽃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 정체성과 국가 상징, 사회 통합의 문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무궁화를 다시 국민의 마음에 피어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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