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분석과 엇갈린 평가 나와
“일반무역국가 수준 격하돼”
“한국기업 가격경쟁력 약화”

[천지일보=이문성 기자] 이재명 정부가 한미 관세협상 타결과 관련해 통상 불확실성을 해소한 ‘실용외교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외교 및 무역 전문가들은 이와 다른 평가를 내렸다. 이들은 0%대 관세 혜택이 사라져 무역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31일 익명을 요청한 서울 소재 S대학교 J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협상은 결과적으로 한국이 한미FTA에서 누리던 혜택을 상실해 사실상 일반 무역국가 수준으로 격하된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그는 “15% 관세는 FTA 체결 이후 0%대 관세 혜택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무역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J교수의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의 투자 약속 규모다. 일본이 미국에 제시한 5000억 달러가 GNI의 11% 수준인 데 반해 한국의 3500억 달러는 GNI 대비 19%에 달한다.
단순 금액보다 상대적 부담이 훨씬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일본의 두 배에 달하는 부담을 한국이 떠안은 셈”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 경영 측면에서도 심각한 부담이 예상된다. J교수는 “국내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세우기 위해 부품이나 설비를 보내는 것조차도 이제는 관세를 물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 FTA 체제 아래 형성되었던 무역 비용 우위가 사라지면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투자 조건의 모호성도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로서는 3500억 달러 투자의 구체적 계획이나 운용 방식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J교수는 “투자 이익의 90% 이상을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라는 언급이 있었는데 실제 문서가 공개되지 않아 진위를 검토할 수 없는 점이 더 큰 불안 요소”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다른 경영 전문가는 본지 통화에서 “기존 자유무역 체제에서 벗어나 관세협정에 정해진 국가에만 투자해야 하는 구조는 기업의 전략 수립을 어렵게 하고 중장기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상 압력이 반복되면 기업은 안정적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번 협정은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 요구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기업계도 현지 생산 강제, 중국 등 대체시장 위축, 2중·3중 부담 등을 현실적 문제로 지적하며 정부의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관세협정이 가져올 또 다른 파장은 한국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 환경 악화다. 과거 한미FTA는 유럽과 중국, 동남아 기업들이 한국에 공장을 설립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FTA 허브’ 전략을 가능케 했지만 그 토대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J교수는 “이번 결정은 한국의 투자 매력 자체를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재명 정부가 실용외교라 자평하며 홍보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전략 없는 양보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타결 직후 ‘2주 후 한미정상회담’을 예고한 점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외교 성과를 거래 수단처럼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상황은 단순한 경제 협정 이상의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FTA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한국은 세계 무역 질서 내에서 입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번 협정이 방위비 분담, 방산 수입, 주한미군 재조정 등 다른 분야에도 연쇄적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지금은 웃을 때가 아니라 깊이 경계해야 할 때라는 지적과 함께 자유무역이 흔들리고 동맹이 조건부 거래관계로 변질되는 이 국면에서 냉정한 현실 진단과 철저한 대비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