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안, ‘검수완박’ 계승… 국민 권익·인권 보장 명목
기소 전담 ‘공소청’과 중대범죄 수사 전담 ‘중수청’ 신설
“제도적 안착 위해 조직 구성원 변화·관리 전략 병행돼야”

검찰. ⓒ천지일보DB
검찰. ⓒ천지일보DB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검찰개혁안이 정치적 쟁점의 중심에 서있다. 개혁안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고, 기존 검찰청을 폐지한 뒤 기소 전담 ‘공소청’과 중대범죄 수사 전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하는 것이다.

이번 개혁안은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된 ‘검수완박’ 정책을 계승하면서 검찰 권한의 분산과 권력기관 간 견제를 통해 국민의 권익과 인권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개혁의 방향성과는 별개로 ▲제도 시행 시 발생할 수 있는 수사 공백 ▲기관 간 충돌 ▲새 조직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수사 지체로 국민만 피해”

과거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 수사와 기소 주체의 분리로 인해 사건 처리 지연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특히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경찰이 송치한 이후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처리 시간이 늘어나는 문제가 지적됐다. 개혁안이 현실화될 경우 공소청 체제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부패·경제범죄 등 검찰이 장기간 축적해온 수사 역량이나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 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에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검찰이 수사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기소만 담당하게 될 경우 경찰과 검찰 사이에서 사건이 반복적으로 오가는 이른바 ‘핑퐁’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검사 출신으로 금융피해자연대 고문을 맡고 있는 이민석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수사권 없이 기소만 담당하게 되면 수사가 미진한 사건에 대해 검찰은 보완수사를 요청할 수밖에 없고 경찰이 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다시 검찰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과정이 반복되면 고소 사건이 지연되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사기범죄처럼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가 필요한 사건에서는 오히려 수사 지연으로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줄 우려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변호사는 또 “현재 검찰이 일정한 수사권을 갖고 있어 경찰 수사가 미진한 경우 직접 수사해 사건을 보완할 수 있지만, 개혁안에서는 이런 기능이 빠져 있다”며 “수사권은 경찰에 1차적으로 부여하더라도 검찰이 최소한 보완 수사 또는 일부 직접 수사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악의적인 수사 지연이나 부실 수사에 대해 검찰이 손을 놓고 있을 경우 시간만 흐르고 사건은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수사기관 간 영역 중첩 우려

보완수사 요청권 외에도 현재 검찰이 행사하는 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 대한 지휘권을 새로운 체제에서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명확하지 않다. 복수의 수사기관이 각기 다른 지휘체계 하에서 운영될 경우 중복 수사나 관할 다툼 등으로 인한 행정 비효율도 우려된다.

실제로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간 수사 영역이 중첩되고, 권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수사위원회를 두어 조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제도적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법조신문은 사설에서 “국가수사위원회는 헌법과 권력 구조를 뒤흔드는 반헌법적 통제기구가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중수청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는 개혁안의 성패를 가를 주요 요소로 꼽힌다. 중수청은 공수처처럼 독립된 조직이 아니라 행정안전부 산하로 편입되는 구조다. 이 경우 경찰과 중수청이 동일한 지휘 라인에 놓이게 되면서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약화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행안부 장관이 직접 수사를 지휘하지 않고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중수청장의 임명 절차가 정치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공수처장 선임 과정에서처럼 추천위원회가 구성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의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중립성 확보 장치가 요구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 중인 오병두 홍익대 법대 교수는 “수사·기소 분리는 긍정적이지만, 권한 분산과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할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성 측면에서는 수사 기능을 기존 검찰에서 중수청으로 이관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인력 구성 문제가 거론된다. 중수청은 검사 없이 수사관 중심으로 운영되고 영장청구권도 갖지 않는 조직으로 구상돼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수사 검사들이 수사관 신분으로 이동하거나, 경찰 출신 인력이 충원되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조직 문화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며 고도화된 금융범죄나 대기업 비리 사건 등에서 요구되는 전문성을 신생 기관이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주요 국가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중대범죄 수사는 검사와 수사관이 협력하거나 검사가 직접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연방검찰이 간첩, 테러, 대형 경제범죄 등 중대범죄를 직접 수사·기소하며, FBI 등 수사기관과 협력한다. 독일은 검찰이 공직비리와 경제범죄 등 중대사건을 직접 수사하고, 경찰이 이를 보조하는 구조다. 영국은 중대범죄수사청(SFO)이 대형 경제범죄에 한해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하며, 일본 역시 특별수사부 등에서 검찰이 부패·기업범죄를 직접 수사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사·기소 분리 자체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운영을 위해선 세부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법조계에서는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 권한 범위, 중수청과 경찰 간 역할 구분 등 실질적인 법·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진보 성향인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는 개혁의 조속한 이행을 요구하면서, 검찰의 권한 집중 구조를 해소하는 데 이번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법조계 일각에서는 권력형 비리 수사 대응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국정농단,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고도의 수사역량이 필요한 사례에서 새 조직이 기존 검찰만큼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 주도권이 확대되는 점은 환영하면서도, 동시에 책임 증가와 이에 따른 부담도 적지 않다는 분위기다. 일선 수사관들은 “기존 검경 간의 견제가 사라지면 초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개혁 완성까지 험난한 과정

개혁안의 입법 절차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법안을 발의했지만, 이는 당정 간 충분한 협의를 거친 결과물이 아니며 야당과 법조계의 반발도 거세다. 연말 정국에서 주요 정치 현안과 맞물려 입법 추진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설령 법 개정에 성공하더라도 제도 정착에는 행정부의 실행력과 수사기관 내 조직문화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도 입법을 통해 검찰 수사 범위를 제한했지만, 정권 교체 후 시행령 등을 통해 원상 복구되는 한계를 경험한 바 있다.

검찰개혁이 제도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법 외적인 노력, 즉 조직 구성원들의 자발적 수용과 적응을 유도하는 변화 관리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아울러 공소청·중수청 수장을 포함한 인사 배치와 대통령실·법무부 등의 요직 인선도 개혁 성공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이재명 정부는 검찰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 개혁안은 형사사법 체계 전반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수사·기소의 분리는 검찰 권력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으나, 현실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높은 기대에 비해 성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평가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제도의 정교한 설계와 함께 정치권, 수사기관, 시민사회의 실질적인 협력이 뒷받침될 때 가늠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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