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급진 단체 인사 체포
이후 반발 시위에 폭력 사태
부족 증오가 부른 ‘종교 갈등’
사상자 수백명 피난민 7만명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수백명의 사망자를 내고 수만명의 피란민을 발생시킨 인도 북동부의 부족‧종교 간 갈등이 또다시 폭력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벌써 2년째다. 이번엔 힌두교 급진 단체 인사들이 체포된 뒤 반발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자 경찰이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인터넷도 차단했다.
8일(현지시간) AFP 통신과 인도 일간 인디언 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인도 마니푸르주 정부는 최근 통행금지령과 함께 5일 동안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한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지난 7일 밤 임팔에서 급진 단체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서를 습격하거나 버스에 불을 질렀고, 일부 도로도 봉쇄했다. 부상자도 발생했다. 이들은 혐오 발언과 혐오 영상 메시지 등을 전송해 대중들의 감정을 자극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마나푸르에는 힌두교(메이테이족)와 기독교(쿠키족)의 골 깊은 갈등이 자리한다. 양측의 적대감은 상당하다. 계층‧민족‧종교가 얽힌 복잡한 갈등 구조 속에서 종교적 구분은 기폭제가 됐다.
◆ 분쟁 촉발한 ‘ST 지위’
갈등은 2023년 4월 마니푸르 고등법원이 메이테이족에 ST 지위를 부여하며 극대화됐다. 마니푸르 고등법원이 메이테이족에 ST 지위를 부여 권고를 했고, 즉각 쿠키족을 중심으로 소수부족의 반발 시위가 발생했다. ST 지위(Scheduled Tribe Status)는 단순한 신분 구분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정치적·경제적 특권을 수반하는 제도적 지위다. ST는 인도 헌법 제342조에 따라 지정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부족 집단’을 의미한다. ST 지위를 얻게 되면 고등학교‧대학교 등 입시에서 우선적으로 배정되는 할당제가 적용되며, 공직 채용시 우선 선발 대상이 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오직 ST만 토지를 소유·거래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방의회·국회에서는 ST 전용 의석이 보장되며, 정부 보조금과 의료·주거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마니푸르의 쿠키족 등 소수부족은 이 혜택을 받고 있었고, 메이테이족은 받지 못했다. 이에 메이테이족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반면 소수부족들은 그간 받고 있던 ST 지위에 따른 혜택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여기에 메이테이족 출신인 비렌 싱 총리가 이끄는 주 정부가 쿠키족을 불법이주자로 낙인 찍고, 메이테이족 민족주의 민병대 조직이 연계되면서 긴장을 부추겼다.

◆ ‘종교청소’ 비판 부른 유혈사태
일촉즉발의 갈등 상황에서 결국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발단은 정치‧정책적인 사안이지만, 폭력의 대상은 종교가 됐다. 다음 달인 5월 메이테이족과 쿠키족의 시위 충돌로 대규모 방화·학살 사태가 발생했다. 경찰 무기가 약탈 됐고 교회 200~300개, 사원 130여개가 파괴됐다. 최소 187명이 사망했고, 7만명이 피란길을 떠나야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유엔 제네바 인권이사회 NGO가 지난해 2월 5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2023년 9월 6일 기준 마니푸르에서만 최소 187명이 사망하고 7만명이 피란을 떠났으며, 1700채 이상의 가옥과 253곳의 교회가 파괴됐다.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기독교 상징과 예배 장소가 표적이 됐다”며 250개 이상의 교회가 훼손·소실되었다고 발표했다.
미국 인도계 기독교 단체연합인 피아코나(FIACONA)은 317개 교회와 70개 기독교 교육시설이 파괴됐으며, “종교 청소” 수준에 이르렀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최소 75명의 기독교인이 사망하고 3만명 이상이 피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동체 간 충돌이라는 명분 아래 임팔 계곡 전역에 있는 거의 모든 교회가 불에 탔으며, 이는 BJP 정부가 지원하는 민병대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 기독교계의 규탄 목소리가 거셌다.
유엔 인권위원회 전문가 19인은 “기독교인들이 불균형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증오 발언과 ‘테러 집단’ 규정이 기독교인에 대한 폭력과 탄압을 정당화했다고 지적했다.
2023년 美 국무부 국제 종교자유 보고서 인도편에 따르면 현지 메이테이족 기독교 지도자는 “우리는 양쪽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보고서는 메이테이족 기독교인이 힌두 정체성을 유지한 메이테이족 민병대와 쿠키족 모두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처치타임스에 인용된 주민 코멘트 중에는 “기독교인들은 군부대에 피신했지만 양측 모두로부터 ‘거부당한 느낌’을 받았다”며 “‘개종하라는 엄청난 압력’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마니푸르 힌두교-기독교, 정착 과정은
마니푸르는 인도 동북부에 있으며,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지역이다. 계곡 지역에 주로 거주하며 주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메이테이족과 산악 지역에 거주하는 티베트-버마계 부족인 쿠키·조·나가 등 소수 민족으로 구분된다.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이 지역은 고유 신앙인 ‘사나마힘(Sanamahi religion)’이 종교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나미힘은 태양신(라야바), 조상령, 자연령을 섬기는 토속 종교이다. 메이테이족은 원래 고유한 조상 숭배 중심의 전통 신앙을 믿었다. 1704년 마니푸르 왕국의 왕인 팜헤이바(Garib Niwaj) 가 힌두교(특히 바이슈나비즘, 비슈누 숭배)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힌두교가 공식 수용됐다. 힌두 승려인 브라만들이 벵골에서 초빙돼 힌두 사원 체계를 정비했다. 기존 전통신앙은 점차 힌두교 안에 흡수되거나 억업됐다.
이후 힌두교는 메이테이족 내 완전히 정착했다. 다만 일부는 여전히 전통신앙을 지키고 있다.
기독교가 쿠키 등 소수민족에게 전파된 것은 메이테이족에 힌두교가 수용 된 이후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이다. 당시 인도는 영국 식민지 시기였으며 1891년 마니푸르 전쟁 후 마니푸르는 영국령 아삼주의 일부로 편입됐다. 이때 웨일스 장로교 선교사, 침례교·감리교 선교사 등이 산악 지역 부족민들에게 선교를 시작했다.
문자 체계가 부재하고 무속 신앙 중심의 사회였던 소수 민족 사이에서 기독교는 교육·의료·근대화의 매개로 빠르게 확산했다. 특히 쿠키‧조‧나가족은 대거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 때문에 마니푸르 산악지대의 부족민 대다수는 기독교인으로 분포하게 됐다. 기독교는 이들 부족의 정체성, 자치권, 교육, 정치까지 깊게 관여했고, 힌두교를 믿는 메이테이족과의 골이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