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종교인, 지지 발언에 우려
“정치 개입 반복, 신뢰 무너져”
교회 등 종교 중립 요구 커져”
“정치세력 도구화 주의해야”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제21대 대통령선거(6월 3일)를 앞두고 종교계 일각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 선언이 잇따르자 교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개신교 등 주요 교계 단체들은 “종교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지지 선언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민 다수가 정교분리 원칙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종교계의 특정 후보 지지가 자칫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정 후보 지지 나선 종교계
앞서 지난 7일에는 광주·전남 지역의 8대 종단 소속 종교인 13명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정의롭고 풍요로운 통합국가 건설을 위해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윤석열, 조희대, 한덕수, 김문수 등의 정치·사법 지도자들을 비판하며, 이 후보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 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23일에는 전국 17개 광역시·도 226개 시군구 기독교총연합회(전기총연)와 보수성향 기독교 300개 단체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문수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김 후보는 차별금지법에 단호히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통일 시대를 이끌 적임자”라며 “정직성과 청렴성, 전통적 가정 가치 수호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또 “보수 진영의 단일화를 통해 건전한 국가 운영의 기반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치 중립’ 당부 잇따라
성직자부터 신자까지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이 잇따르자 교계에선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치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신교 연합기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최근 입장문을 내고 “종교 지도자는 정치적 편향을 드러내기보다, 교인 각자가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특정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종교가 정치 권력에 예속돼서는 안 되며 교회는 사회의 양심이자 비판적 목소리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정치적 중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종교시설이나 종교단체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는 공직선거법상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85조는 종교시설 내 선거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종교인이 직무상 지위를 이용해 특정 후보를 지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종교계의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은 선거철마다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2020년 서울의 한 교회 담임목사 A씨는 예배 중 신도들을 상대로 특정 정당 지지 발언을 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직무상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벌인 점이 인정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고, 항소심에서도 이 같은 판단은 유지됐다.
이러한 사례가 이어지자 일부 교계에서는 불법 선거운동을 감시하겠다며 ‘공명선거 모니터링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들은 교회 내 예배와 설교, 주보 광고 등을 모니터링해 선거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며, 종교적 정치 개입에 대한 자정 노력을 강화하겠단 방침이다.

◆국민 여론 “정교분리 원칙 지켜야”
무엇보다 정교분리 원칙을 중시하는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종교계의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은 종교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2022년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4%가 “종교는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종교계에 대한 불신 비율은 과반이 넘는 58%에 달했다. 종교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특히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일부 한국교회 행태는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며 “대선 국면에서 교회가 정치세력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전문가들도 종교계의 정치 개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회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신앙의 이름으로 어느 한 정치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일은 교회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기독교 전통 안에서도 정치적 중립성은 지켜야 할 핵심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종교의 정치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있다. 정원범 대전신학대 교수는 한국기독공보 기고에서 “신앙과 정치의 분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독교인은 정치·경제·사회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라며 “성경이 말하는 최고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정치에 무관심한 채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는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라며 “그런 점에서 신앙이 정치와 단절돼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오히려 신앙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