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 광양=김정필 기자] 바다를 삼켜 만든 광활한 대지 위, 뜨거운 철의 심장이 쉼 없이 뛰고 있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한때 조용한 갯벌이었던 이곳은 지금 불꽃과 쇳물, 숨 가쁜 기계 소리로 가득 찬 거대한 생명체가 됐다. 국내를 넘어 세계 최대급 규모를 자랑하는 제철소로 매일 24시간 쉼 없이 뜨겁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26일 기자는 ‘Park1538 광양’ 홍보관 투어의 일환으로 광양제철소를 둘러봤다. 바다를 메운 대지 위에 세운 ‘철의 도시’는 거대한 공장 이상의 무엇이었다. 푸른 나무들과 깔끔한 주택단지,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철강 설비가 어우러진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와도 같았다.
버스를 타고 제철소 내부로 진입하자 “제철소 건설과 동시에 5000세대 규모의 주택단지를 만들었다”며 “이곳은 단순한 공장이 아닌, 직원과 가족 1만 2000명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철강해설사 설명이 이어졌다. 일반 기업들이 이익을 낸 뒤 사택을 짓는 것과는 달랐다. 이는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복지 철학의 일환이다.
![[천지일보 광양=김정필 기자] 26일 전남 광양시 ‘Park1538 광양’에서 열린 홍보관 투어에서 관람객들이 광양제철소의 성장 과정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25.04.26.](https://cdn.newscj.com/news/photo/202504/3263213_3325866_756.jpg)
제철소 부지는 매립지다. 4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갯벌과 모래로 이뤄진 13개 정도의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어촌 마을이었다. 지난 1982년부터 3년에 걸쳐 바다를 메운 이 대지는 연약지반을 다지는 ‘모래말뚝공법’을 국내 최초로 적용한 흔적을 품고 있다. 부지 곳곳에 지름 40㎝, 깊이 10~25m의 모래기둥을 박아 넣고 삼투압의 원리를 이용해 뻘층에 있던 수분을 뽑아내 단단한 지반을 만들었다.
철강해설사는 “땅속 깊숙이 박힌 104만개의 모래말뚝과 스틸파이프가 이 거대한 제철소를 지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다 위에 세운 기적’이라는 수식이 과장이 아니었다.
창문 너머로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차량이 눈에 띄었다. 토페도카다. “1538도 쇳물을 싣고 이동하는 특수차량”이라는 철강해설사의 설명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쇳물을 실은 토페도카가 철길 위를 부드럽게 지나가는 모습은 마치 ‘이동하는 용광로’를 보는 듯했다.
![[천지일보 광양=김정필 기자] 26일 전남 광양시 ‘Park1538 광양’에서 열린 홍보관 투어에서 관람객들이 광양제철소의 성장 과정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25.04.26.](https://cdn.newscj.com/news/photo/202504/3263213_3325876_249.jpg)
광양제철소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서울 여의도의 7배, 축구장 3000개가 들어설 수 있는 666만평. 포항제철소보다 면적은 1.7배 넓고 조강 생산량도 더 많다. 광양제철소에는 총 5개의 용광로가 가동 중이고 하루 생산량은 약 6만톤(t)으로, 승용차 6만대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제철소 안에는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심겨 있어 ‘공원 속 제철소’를 구현했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버스는 열연공장 방향으로 이동했다.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공장들, 그리고 특수 제작된 이티카(ET Car)들이 무거운 코일을 나르고 있었다. 철강해설사는 “이티카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무게가 135톤(t)인데, 코일 10개를 한 번에 나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은 자동차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트럭은 48개의 바퀴를 달고 제철소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드디어 광양제철소의 자랑,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1고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110m. 레미콘 1000대 분량이 들어간다는 거대한 고로를 보자 압도감이 밀려왔다. 고로는 한 번 불을 붙이면 15년 이상 꺼뜨릴 수 없다. 때문에 제철소는 365일, 24시간 가동된다. 이에 따라 광양제철소 직원들도 4조 2교대로 교대 근무중이다.
고로 옆 부생가스 저장탱크와 가스파이프 라인이 이어졌다. 고로, 코크스공장, 제강공정 등에서 나오는 부생가스는 자체 발전소에서 전력으로 재탄생한다. 광양제철소는 자체 발전으로 필요한 전력의 95%를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버스는 원료부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형 선박이 접안해 있었다. “광양은 자연적으로 작은 섬들이 둘러싸여 태풍과 해일을 막아주는 최적의 입지”라며 밀물과 썰물의 차가 적어 30만t급 초대형 선박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했다.
이날 투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제2열연공장 내부였다. 눈앞에서 거대한 슬래브(철판 덩어리)가 1200도 고열로 가열되고 이어 강력한 롤을 통과하며 얇은 철판으로 변신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지금 강판의 온도는 약 1400도입니다. 처음 두께는 25cm, 길이는 5~10m지만 최종 공정을 거치면 길이는 100m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철강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시뻘겋게 달아오른 슬래브가 거대한 롤러 위를 ‘치익-치익’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슬래브가 롤을 통과할 때마다 눈에 띄게 얇아졌고, 롤러 위로는 순간순간 수증기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뜨거운 슬래브를 식히기 위해 강력한 물줄기가 쏟아졌고, 그 물은 다시 회수돼 98% 이상 재활용된다고 했다. 철강해설사는 “바닷물 쓰는 것이 아닌 인근 댐에서 끌어온 민물을 사용해 철저한 재활용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사용한 롤을 교체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래 사용하면 변형이 생기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롤을 갈아준다고 했다.

냉각과 압연을 마친 열연코일은 운반과 출하를 위해 이티카에 실려 나갔다. 열연코일과 냉연코일, 그리고 두께 6㎜ 이상의 후판 제품까지 이 모든 철강 제품은 출하 전, 각각의 특성에 맞춰 꼼꼼히 포장됐다. 열연코일은 밴딩 처리만 돼 있었고 자동차용 도금 코일은 빛나는 은색 포장으로 단단히 감싸져 있었다.
투어가 끝날 무렵 철강해설사는 “제철소 둘레가 21.5㎞에 달한다”며 “하프 마라톤 코스”라고 설명했다. 이번 투어로 본 것은 엄청난 규모의 광양체철소 중 작은 일부임을 강조한 것이다.

직원 복지 시설도 인상적이었다. 제철소 안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기관이 있고, 영화관, 쇼핑센터, 은행, 우체국까지 있다고 했다. 퇴직한 직원들도 높은 만족도로 이 지역에 남아 생활하고 있다. 신입사원을 위한 ‘기가타운’은 5년간 무료 제공된다. 서울 오피스텔 부럽지 않은 최신 시설들이다. 문화 공간 ‘백운아트홀’도 지역민과 함께 사용된다. 콘서트, 강연, 영화가 무료로 열리며,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철의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한 도전도 진행되고 있다. 포스코는 석탄 대신 수소를 이용해 쇳물을 만드는 기술인 ‘하이렉스(HyREX)’를 개발 중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과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포스코는 저탄소 공법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40여년 전 바다를 메워 기적을 이룬 이곳은 이제 미래를 위해 다시 한번 뜨거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