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부분휴전 즉시 발효… 러 위반 땐 미국에 제재·무기요청”
러 “러시아 은행·국제 금융 시스템간의 연결이 회복돼야 협정 발효”

[천지일보=방은 기자] 3년 넘게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중재로 ‘흑해에서의 휴전’과 ‘에너지 인프라 공격 중단’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농산물과 비료 수출을 돕기로 하면서 서방 제재 약화 논란이 거론되며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남겼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이날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을 위한 실무 협상 결과를 소개한 보도자료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30일간 흑해 해상 공격과 에너지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면서 “러시아에 대한 일부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양국은 흑해에서 무력 사용을 배제하고,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며, 상선을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번 해상 휴전에 관한 합의는 전쟁 초기 러시아가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에 사실상의 해상 봉쇄를 가해 세계 식량 위기를 악화시켰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합의는 지난 23∼25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이 중재한 협상을 통해 이뤄졌다. 미국 측 협상단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표단을 잇달아 만나며 ‘흑해와 에너지 분야 휴전’ 합의를 중재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표단은 직접 만나지 않았으며 미국 측이 양국 대표단과 따로 회담하며 ‘3각 합의’를 유도해 합의했다.
다만 합의 발효 시점을 두고 양측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합의 효력이 즉시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러시아는 농산물과 비료 수출 제재 해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농산물과 비료 수출에 대한 국제 제재 해제를 위한 지원을 약속했는데, 이는 러시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사항이다. 2022년 2월 전쟁이 발발한 이래 서방은 러시아의 농산물 자체를 제재하지 않았지만 결제시스템 차단 등 금융 제재를 통해 실질적인 거래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러시아는 흑해 휴전 발효 조건으로 농업 관련 금융 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미국이 이에 협력하기로 하면서 합의가 성사됐다. 합의로 흑해에서 긴장 완화가 기대되지만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러시아가 이번 합의를 지렛대로 삼아 추가적인 제재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우리는 많은 진전을 이루고 있다”면서도 “회담에서 엄청난 적대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일부 러시아 은행과 국제 금융 시스템간의 연결이 회복되지 않는 한 흑해 협정은 발효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이전에 지지했던 30일간의 전면 휴전을 제안한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했다.
러시아는 에너지 공격 중단 관련에 대해서는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처음 논의한 지난 18일부터 30일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지난주에 공식 합의가 이뤄진 후에야 그러한 중단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는 전쟁 내내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전력망을 공격했으며, 민간 에너지 인프라가 우크라이나의 전투 능력에 도움이 되므로 합법적인 표적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석유 및 가스 시설에 대한 장거리 공격을 개시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시설이 러시아 군대에 연료를 공급하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수입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이번 합의에 대한 조건에 있어 유럽에서는 반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무역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접근 방식을 놓고 미국과 대서양 동맹인 유럽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추가적인 균열을 초래할 수 있어 보인다. 미국의 도움으로 러시아의 농산물과 비료 수출이 원활해지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효과가 사실상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성급하게 거래를 해서 자국의 안보를 훼손하고 러시아의 요구에 굴복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미국이 러시아 농산물 수출에 어떻게 협력할지에 관한 세부 사항을 아직 잘 알지 못한다면서 “우리는 이것이 제재의 약화라고 생각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면서 “휴전 협정은 즉시 발효될 것”이라며 “러시아가 이를 위반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제공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는 러시아 시설이며, 이에 대한 통제권을 우크라이나나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부처는 원자력 발전소의 물리적, 핵적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동 운영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부분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자포리자 지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7개월 후 실시된 국민투표에 따라 러시아 땅으로 합병됐다고 밝혔다.
반면 서방 국가들은 이 국민투표를 가짜라고 일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