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포비아에 아파트전세 인기… 전셋값도 65주째 상승세
“8.8대책, 낙인 지우기엔 부족” “전세보증보험 문턱 낮춰야”

정부가 빌라로 대표되는 소형 비아파트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청약 시 무주택으로 인정되는 비아파트 범위를 늘리는 등 최근 위축된 비아파트 수요·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8일 오후 서울 시내 빌라 등 주거단지의 모습. 2024.8.8. (출처: 연합뉴스)
정부가 빌라로 대표되는 소형 비아파트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청약 시 무주택으로 인정되는 비아파트 범위를 늘리는 등 최근 위축된 비아파트 수요·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8일 오후 서울 시내 빌라 등 주거단지의 모습. 2024.8.8.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포비아’가 확산하면서 아파트 전셋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비(非)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투명한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 수요가 몰린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비아파트 활성화 대안을 제때 내놓지 못한 정부에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가 비아파트 시장을 방치하는 동안 아파트값이 치솟았다는 분석에서다. 또한 뒤늦게 나온 대책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세사기가 터진 직후인 지난해 2월과 3월 서울 전세 거래량은 각각 1만 6172건, 1만 6463건으로 전년 평균(1만 2천건)보다 4천건 이상 뛰었다. 이는 같은해 1월(1만 2387)보다도 4천건 가까이 높은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빌라 거래량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1분기 서울 빌라 전월세 거래량이 2만 7617건으로 집계되면서다. 이 중 전세 거래량은 1만 4903건으로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1년 이후(매년 1분기 기준) 가장 적다.

아파트 임대차 시장은 분위기가 다르다. 지난해 3월 이후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예년 수준인 1만 2천~1만 3천건대를 회복했다. 빌라에서 이탈한 수요가 몰리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지난해 5월 넷째 주 이후 65주 연속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아파트 전셋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 1585만원이다. 면적별로 보면 전용 60㎡ 이하 소형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4억 357만원, 중소형(60㎡ 초과~85㎡ 이하) 아파트는 6억 582만원이다. 특히 소형 아파트는 2022년 12월 이후 처음 4억원 돌파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격지수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격지수는 129.6으로 직전 최고점 127.9(2022년 9월)를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기준(100)이 되는 지난 2017년 11월보다 29.6% 올랐다는 의미다.

수요가 몰린 여파로 아파트 전세 품귀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이달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42.9다. 100을 기준으로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다. 이는 집값 급등기인 2021년 10월(162.2)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해당 지수는 지난해 8월 100을 넘어선 후 계속 오르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전세사기 이후 비아파트를 기피하는 경향이 커졌다”며 “비아파트 시장 투명화나 안정적 비아파트 전세 공급안만 나왔어도 아파트 전셋값이 치솟는 상황까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관계 장관회의 중 발언하고 있다. 2024.8.8. (출처: 연합뉴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관계 장관회의 중 발언하고 있다. 2024.8.8. (출처: 연합뉴스)

한편 국토교통부가 이달 발표한 ‘8.8대책’도 비아파트 정상화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다만 업계에선 실효성이 있을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빌라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세제 혜택은 제시됐지만, 정작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는 빠졌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소형 비아파트 구입 시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청약 시 무주택으로 인정되는 비아파트의 범위를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비아파트 투자 수요를 자극해 공급을 촉진하고, 비아파트가 주거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비아파트 시장의 신뢰가 이미 크게 훼손된 상태라는 점이다. 정부가 세제 혜택으로 공급자를 유입해도 이미 신뢰를 잃은 시장에 소비자는 물론 공급자가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또한 대책에는 임대인들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공시가격의 126%에서 150%로 완화해달라는 요청도 빠졌다. 정부는 HUG의 손실이 치솟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결정을 했지만, 전세보증이 되지 않는 비아파트가 늘어나 빌라 기피 현상에 불을 지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비아파트 시장의 회복을 위해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제도의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주택시장이 침체했을 때, 아파트 분양사업이 어려워지면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사용됐지만, 지난 2015년 이후 세입자 권익 강화 조치가 제도화되면서 사업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는 임대료 관련 분쟁을 초래했고, 임대사업자가 설 땅이 좁아졌다.

국회에도 비아파트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반환보증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정부는 HUG의 반환보증 가입 시 적용되는 주택가격 산정 방식을 변경해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조처를 했다. 다만 이에 따라 반환보증 가입 범위가 줄었고, 임차인들은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전세주택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전세사기가 무서워 빌라에 못 살겠다’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근본적인 제도 개선과 시장 투명화 대책이 필요하다”며 “현장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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