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 청도군 운문면에 걸쳐 있는 가지산(1240m)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유럽에 알프스(Alps)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도 울산, 밀양, 양산, 청도, 경주를 중심으로 펼쳐진 영남 최고의 산맥이 있다. 해발 1000m 이상 되는 7개의 산군(山群)이 유럽의 알프스산맥에 견줄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 ‘영남의 알프스’. 그중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 청도군 운문면에 걸쳐 있는 가지산(1240m)의 비경은 그야 말로 탄성을 자아낸다.

새벽 3시. 글마루 답사팀은 조금은 이른 아침을 맞았다. 울릉도를 목적지로 떠난 답사였기에 분주히 움직였으나 갑작스런 일기의 변화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스케줄을 조정해 울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나마 새벽길을 달려 왔던 터라 울산으로 목적지를 급선회했어도 첫날의 스케줄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갑작스레 변경된 스케줄에 어디부터 답사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도 잠시, 울산이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지닌 도시라는 사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포항에서 달려 도착한 울산은 ‘중공업 도시’라는 타이틀만 생각하던 기자에게 반전의 매력이 돋보이는 생태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게다가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는 해발 1240m의 가지산까지 딱 버티고 있으니 그야 말로 산 좋고, 물 좋은 도시가 아니겠는가.

울산 12경, 태화강 선바위와 십리대밭

처음 답사팀이 발을 디딘 곳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에 위치한 태화강 선바위 일대다. 동해 경계에 위치한 태화강은 길이 46.02㎞, 유역면적 643.96㎢로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가지산과 고헌산(1033m) 등에서 발원하는 남천(南川)을 본류로 동쪽으로 흐른다.

2006년 울산발전연구원의 탐사연구에 따르면 태화강은 다른 강에서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강물의 시원점인 ‘원류’가 두 곳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가지산은 역사적 개념의 발원지로, 백운산은 하구로부터 최장거리를 원류로 삼고 있는 지리적 개념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즉 가지산 쌀바위까지 유로(유역 길이)가 45.43㎞인데 반해 백운산 탑골샘까지는 47.54㎞로 실측되면서 백운산 탑골샘이 ‘최장거리 발원지’로 확정됐으며, 가지산 쌀바위는 ‘상징적 발원지’로 개념이 바뀌게 된 것이다.

 

 

 

▲ 태화강 선바위. 마치 금강산 해금강의 한 봉우리를 옮겨 놓은 듯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태화강 상류를 따라 걷다 보면 백룡이 살았다는 전설이 깃든 백룡담 위로 마치 금강산 해금강의 한 봉우리를 옮겨 놓은 듯 기묘한 형상을 한 바위를 만날 수 있다. 높이 33.2m, 둘레 46.3m의 이 선바위는 뒤에 장엄하게 버티고 있는 절벽과 뚝 떨어져 있어 그 신비함이 더한다. 게다가 이 기묘한 형상의 바위는 주변 바위들과는 전혀 다른 재질이라고 하니 볼수록 신기하고 알수록 신비하다.

한참동안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세에 물들지 않고 독야청청하겠다는 선비들의 올곧은 절개와 기개가 뿜어져 나오는 듯 위풍당당한 모습마저 느껴졌다. 그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강물 위로 우뚝 솟은 모습에서 태평성대를 꿈꾸는 임금의 모습이,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리라는 굳은 맹세를 한 장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곳을 수없이 오고갔을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모습이 교차되며 한 구의 시조가 떠올랐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맑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소리 맑다하나 그칠 때가 많은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른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 태화강 선바위. 마치 금강산 해금강의 한 봉우리를 옮겨 놓은 듯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1587~1671). 숱한 배신과 모함으로 여러 번에 걸친 귀양살이 도중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세상을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삶을 노래했다. 아마도 이곳 선바위를 찾았던 많은 시인묵객들 또한 그러했으리라.

검푸른 수면 위로 선명하게 투영된 선바위의 모습. 산인가 바위인가 하늘에 솟은 이 층암을 찾던 이들은 분명 이곳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풍류를 즐겼으리라. 이들 선인들이 이곳에 정각을 세웠으니 바로 ‘입암정’이다. 정몽주, 이언적, 정구 선생 등이 이곳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선바위 뒤로 보이는 절벽 끝자락에는 용암정이라는 작은 암자와 선암사라는 자그마한 절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답사팀이 찾은 날에도 선암사에서 흘러나오는 목탁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며 평온함을 더했다.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용암정에는 제법 높은 담이 둘러있어 선바위의 경관을 가리는데, 이는 불가의 도리를 깨닫기 위해 용맹 정진하는 스님들의 마음을 선바위가 설레게 한다고 해 만들어진 담장이라고 한다.

백룡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서일까. 옛날 선인들은 날이 가물어 천지가 타오를 때면 이곳에서 머리 숙여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선바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눈이 즐거울법한데 이 선바위를 기점으로 태화강변에 조성된 십리대밭 길은 마음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4㎞에 이르는 긴 구간에 조성된 대나무 숲은 일제강점기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홍수 방지용으로 대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라 한다. 반면, 울산 최초의 읍지인 1749년 <학성지>에 “오산 만희정 주위에 일정 면적의 대밭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태화강변에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국 수호의 염원이 깃든 대왕암

 

 

 

 

▲ 대왕암.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문무대왕비가 호국룡이 되고자 큰 바위 아래로 잠겼다는 전설이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신라 문무대왕의 수중릉(水中陵, 사적 제158호, 대왕암)이 있어 동해를 수호한다면, 울산에는 문무대왕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문무대왕비가 남편처럼 동해의 호국룡이 되고자 큰 바위 아래로 잠겼다는 전설이 깃든 대왕암이 있다.

울산 대왕암은 울주군 간절곶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이다. 한반도 동남단에서 동해 쪽으로 가장 뾰족하게 나온 부분의 끝 지점에 해당하는 대왕암공원은 동해의 길잡이를 하는 울기항로표지소로도 유명하다. 공원입구에서 등대까지는 600m 송림이 우거진 길로 수령이 100년이 넘는 1만 5000그루의 아름드리 해송이 우거져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해송은 사시사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해풍을 막아줄 뿐 아니라 대왕암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울산 12경 중 하나인 대왕암공원은 신라 문무대왕비가 “죽어서도 호국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바위섬 아래 묻혔다는 전설에 걸맞게 거대한 바위(대왕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옅은 황토색과 붉은 기운을 살짝 감도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군집을 이뤄 일대 장관을 이루는 대왕암공원은 예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해금강’이라 불렸다. 마치 호국용이 돼 대왕암 아래 잠든 문무대왕비를 호위라도 하듯 군집을 이뤄 검푸르고 짙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기암괴석들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문무대왕비가 호국룡이 되고자 큰 바위 아래로 잠겼다는 전설이 있는 대왕암. ⓒ천지일보(뉴스천지)

파도의 세기와 높낮이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는 주변 바위들을 보며 ‘전설의 섬’으로 불리는 이어도(파랑도)가 언뜻 떠올랐다. 죽음의 섬이면서 또한 구원의 섬인 이어도.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대왕이었지만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겠다던 그와, 남편을 따라 호국용이 돼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뜻을 밝힌 문무대왕비. 잠시 사라졌다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해 평온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문무대왕비의 간절한 외침 같았다.

대왕암은 육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바다에 있어 점점이 이어진 바위를 기둥 삼아 가로놓인 철교를 건너야 다다를 수 있다. 대왕암은 댕바위, 혹은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해 용추암이라고도 불린다. 이외에도 괴이하게 생겼다 하여 쓰러뜨리려다 변을 당할 뻔 했다는 남근바위, 탕건바위와 자살바위 등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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