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체를 이웃사랑 실천
아들과 함께 장기기증 나서
‘들사람 노명환’ 책 출간도
“나무도 꽃도 모두 내 이웃
이웃 생각하는 마음 가져야”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이웃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봉사’라고 생각지 말고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올해 88세인 노명환씨는 60세에 가족도 친척도 아닌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주고도 끊임없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노씨는 지난 1995년 ‘장기기증’이란 개념이 낯설던 시기에 콩팥을 기증했다. 故김광호 서울대의대 학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안구를 기증하고, 시신은 해부학 연구에 쓰게 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크게 감동받았다고 한다. 아들 성철씨도 그와 함께 신장을 기증해 ‘부자(父子) 장기기증’이란 특별한 기록을 세웠다.
노씨는 장기를 기증한 이후 자신만의 비결로 건강을 관리해왔다. 비결 중 하나는 매일 같이 산을 오르는 일이었다. 노씨는 지난 15년간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도락산을 올랐다고 한다. 도락산 정상까지는 왕복 8.4㎞, 걸음 수로 따지면 1만 6500보 나온다. 노씨는 산을 다니다가 보수가 필요한 곳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질 않았다. 양주시청 민원실에 전화하거나 그의 손으로 직접 보수해나갔다. 자신을 위해서 또 남을 위해서였다. 그의 별명이 ‘도락산 지킴이’인 이유다.
노씨는 최근 약 90년 인생을 살아오며 겪은 삶의 풍파와 자신의 신념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를 잘 아는 주변 사람과 이웃을 불러 소소하게 출판 기념회도 열었다. 책 제목은 ‘들사람 노명환 이야기’다.
천지일보는 지난달 노씨를 도락산에서 만나 그의 삶의 기록을 들어봤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도락산 지킴이’ 노명환씨가 지난달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은 노씨가 경기도 양주시 도락산 3보루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3.02.12](https://cdn.newscj.com/news/photo/202302/3003697_3000570_3741.jpg)
◆“세 번 삶의 기회 얻은 뒤 이웃사랑 결심”
노씨는 1935년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이라는 시대적 풍랑을 온몸에 맞은 세대다. 농사일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1960년 군대에서 ‘사상계’를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떴다. 그는 겸손하고 조용한 성품을 지녔지만 옳다고 여기는 일에 있어선 자신을 굽히지 않는 강단이 있었다. 노씨는 박정희 정권에 맞서는 글을 잡지에 실었다가 옥고를 치러야 했다.
시대적 아픔뿐 아니라 가정과 그 자신에게도 아픔이 찾아왔다. 그의 아내가 교회 부흥회에 갔다가 몸져누웠다. 28세의 생때같은 막내아들을 사고로 잃어 가슴에 묻어야 했다. 그 자신도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14세에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절벽에서 떨어진 일, 64세에 교통사고를 당한 일, 78세에 대장암에 걸린 일이다.
노씨는 “세 번의 삶의 기회를 얻었다고 여긴다”면서 이를 계기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씨가 생각하는 최고의 이웃사랑은 ‘장기기증’이었다. 노씨는 “내 몸과 장기로 여러 사람이 살고 의학발전에도 도움을 주는 시신‧장기기증이야말로 최고의 봉사”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기증을 한 뒤 자신의 몸을 더욱 사랑하고 관리하게 됐다. 산을 열심히 올랐던 탓인지 지난 2018년 류머티즘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류머티즘을 치료했고 ‘재활’을 하려고 또다시 산을 올랐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도락산 지킴이’ 노명환씨가 지난달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2.12](https://cdn.newscj.com/news/photo/202302/3003697_3000571_3841.jpg)
◆“사람만 이웃인가, 자연도 내 이웃”
90세를 앞둔 ‘백발 어르신’이 매일 산을 오른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지난달 등산에 함께 따라나섰다. 노씨는 기자를 가장 좋은 등산코스로 안내했다. 노씨는 지난 15년간 매일같이 다닌 도락산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었다. 노씨는 “도락산은 흙길이라 건강 운동하기에 아주 좋은 산”이라고 소개했다.
거침없이 산을 오르던 노씨는 멈춰서서 한 통나무 계단을 보여줬다. 그 계단은 노씨가 시청에 민원전화를 걸어서 만들어진 계단이었다. 그러나 시청 직원들이 놓친 부분이 있었다. 비가 내리면 흙이 덮쳐 통나무 계단을 메꿔버리고 말았다. 노씨는 직접 통나무를 날라서 계단 옆에 덧대어 흙이 넘치지 못하도록 막아뒀다고 설명했다.
도락산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4개의 보루가 있다. 이중 3보루에 도착해서야 노씨와 함께 따뜻한 믹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내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박샛과 새들이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노씨는 여름에는 ‘람아(다람쥐야), 이리와. 나야 괜찮아’라고 말하면 겁 많은 다람쥐도 그에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노씨에겐 도락산 지킴이 말고도 또 다른 별명이 있다고 한다. 바로 ‘도락산 산신령’이다. 백발의 어르신이 산에 앉아서 쉬자 새들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니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노씨는 다정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산은 철마다 (모습이) 바뀌잖아요. 꽃도 바뀌고 나무 이파리며 색깔이며 다 바뀌죠. 길도 다 다르고 오는 사람도 많지요. 그게 다 내 이웃입니다. 사람만 이웃이 아니라 자연의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전부 다요. 아침에 일찍 나와서 걸으면 어제까지 안 피웠던 꽃이 펴있지요. 그네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잘 잤냐. 참 예쁘다. 안녕.’”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도락산 지킴이’ 노명환씨가 지난달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은 노씨가 경기도 양주시 도락산을 오르는 모습. ⓒ천지일보 2023.02.12](https://cdn.newscj.com/news/photo/202302/3003697_3000572_408.jpg)
◆“죽어서도 한 그루 나무의 거름 되고파”
도락산 정상에 오르자 노씨는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노씨는 “죽어서도 나는 납골당 단지 안에 있기는 싫어요. 날마다 산에 다니는 자연인을 납골당 안에 가둬놓지 말고 내 쉼터에 묻어달라고 했어요”라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터뷰 첫 질문에서 자기 자신을 “들사람이요 자유인”이라고 소개하던 노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시신을 기증한 뒤 미리 정해둔 도락산 ‘명당자리’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아들과 손자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의 말이 있냐고 물으니 노씨는 이렇게 답했다. “몸이 건강해야지만 마음도 건강합니다. 항상 평화로운 마음,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