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하 BH조형교육원 원장 (사진제공: BH조형교육원)

김병하 BH조형교육원 원장

‘키덜트 토이’ 시장에 날개 달아준 3D프린팅 기술
일본 제작자 수작업 고수… 국내서 진출 유리해

▲ 김연아 피규어 (사진제공: BH조형교육원)
내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내가 좋아하는 영화 주인공을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상상 속 얘기가 아니라 ‘키덜트’에게 각광받고 있는 피규어 얘기다. 키덜트란 어린이를 뜻하는 Kid와 어른을 뜻하는 Adult의 합성어로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을 말한다.

지난 3월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키덜트엑스포에는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 아톰, 영화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까지 수많은 피규어가 전시됐다. 또 17일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아트 토이 컬쳐’ 전시가 열린다. 이어 5월에는 2012년 국내에서 700만 관객을 동원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어벤져스’의 후속편 개봉 마케팅으로 영화 속 히어로들을 만나볼 수 있는 ‘어벤져스 스테이션’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한 달에 한번 꼴로 ‘키덜트 토이’ 전시가 열리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 규모 있는 전시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파스타를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도,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카페에서도 귀여운 아트 토이나 캐릭터 피규어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인테리어 소품으로 찾기도 하는 등 이제는 키덜트에게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로써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피규어를 포함한 ‘키덜트 토이’ 시장 전체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3D프린팅 기술까지 더해져 그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한 작품의 생산 속도가 10배 이상 빨라졌다. 정확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BH조형교육원을 이끌고 있는 김병하 원장의 말이다. BH조형교육원은 3D프린팅 기술을 접목한 피규어, 구체관절 즉 ‘키덜트 토이’ 관련 교육을 하는 국내 유일한 교육원이다.

3D프린팅 기술이 도입된 후 피규어나 구체관절 등 3D조형을 찾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다. 교육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동시에 이걸 상품화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 구매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 등 전반적으로 분포돼 있다”고 김 원장은 말했다. 김 원장은 “3D프린팅 관련 산업은 단순히 완구·장난감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써 1차로 만들어진 만화, 게임 캐릭터 등의 콘텐츠를 2차 상품으로 활성화시키는 데 굉장히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BH조형교육원이 개원하기 이전, 엔씨소프트로부터 시작된 실사 게임 캐릭터가 활성화됐으나 우리나라에는 이를 만들 수 있는 기초 교육을 하는 곳이 전무했다. 때문에 이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당시 엔씨소프트, 넥슨 등의 게임 회사와 대학교 등지에서 이에 대해 강의하고 있던 김 원장에게 계속 부탁을 해왔고, 김 원장은 지금의 교육원을 개원하게 됐다. 지금은 게임 성향이 모바일 쪽으로 넘어가면서 게임 분야보다는 현재 활용되는 문화 콘텐츠를 활용하거나 3D프린팅 피규어, 구체관절인형 등 키덜트 토이 쪽으로 교육을 받으러 온다고 한다.

▲ 김수환 추기경 피규어(왼쪽)와 선덕여왕 피규어 (사진제공: BH조형교육원)

BH조형교육원에서는 G브러쉬, 라이너라는 프로그램으로 교육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유저를 보유하고 있으며, 실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피규어나 구체관절 등을 만드는 교육을 하며 교육뿐 아니라 생산, 상품화도 하고 있다. 수업 과정을 배운 사람들은 피규어 업체, 구체관절인형 업체, 게임 업체, 애니메이션 등 일본과 국내의 관련 업계에 취업하거나 창업하고 있다.

회화 조각 건축 등 ‘조형예술’이라 하면 손재주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3D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장벽은 무너졌다. 김 원장은 “과거에는 특화된 영재들의 교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3D라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훨씬 간편하게 인체 캐릭터를 제작할 수 있다”며 “‘타블렛’이라는 전자펜으로 그림 그리듯 쉽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다고 한다. 기초 조형교육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기초 조형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프로그램 교육을 받으면 어렵고 접근하기 힘들어 현실적인 창업이나 취업을 하긴 어렵다”고 조언했다.

3D프린팅 기술이 나온 것은 불과 얼마 전. 직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수작업이었다. 김 원장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1500년 전 가야 소녀를 복원해 실제 크기의 조형으로 만들었던 것이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의미가 큰 작품이어서도, 멋지게 완성된 작품이어서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해야만 했던 그때, 어시스턴트 하나 없이 힘겹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수작업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한국의 일본 진출이 유리해졌다. 일본 업계에서는 3D프린팅 활용 피규어 제작을 굉장히 필요로 하는데 정작 자국의 제작자들은 3D 도입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미국 다음으로 피규어 산업이 큰 일본에서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 하니,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진출하기 더 쉬워진 건 역시나 3D 덕분이다. 김 원장은 “예전에는 사진을 찍어 보내니 정면, 측면, 뒷면 이렇게 밖에 볼 수 없었다. 조형물을 계속 돌려가면서 서로 얘기도 하고, 어디가 문제다 말하고 싶은데 사진으로는 모두 체크하기가 어려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한 상황이었으니 모든 면을 확인하기 위해 무조건 현지에 가서 근무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현지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3D도안만 만들어 넘겨주면 업체에서 실시간으로 모든 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김 원장은 “예전엔 무조건 현지 근무를 해야 했다면 지금은 20~30%로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은 매년 20%씩 성장하고 있으며, 현재 연간 7000억원대로 커졌다. 국내 시장도 갈수록 넓어지고, 피규어 산업 규모가 큰 일본에서도 국외에서 사람을 찾고 있으니 취업난인 시대에 하나의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한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두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김 원장은 말한다. “이런 행위 자체를 좋아만 한다면 누구라도 선택할 수 있어요. 재능 여하보다는 자기의 호기심 여하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 두려워하기보다 도전하는 것이 취업난을 뚫을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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