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는 기회라 했다. 대화로 해결 못할 게 무어 있겠는가. 신뢰할 만한 실력자끼리의 사전담판은 필수적이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는 국무부의 통상적인 외교경로를 외면하고, 1971년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해 닉슨 방중의 길을 열었다. ‘6공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장관은 군사정부에서 열린 남북비밀회담에 42차례나 대표로 참석했다. 공식접촉 외에 특사교환, 비밀회담, 막후접촉 등을 모두 활용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혹시 비밀회담에서 과거처럼 ‘현금보따리’가 운위된다면 우리 측은 대신 획기적인 남북경협카드로 돌파해나가야 할 것이다.
요즘 하는 말로 ‘심쿵’이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말에 가슴이 뛴다. 솔직히 긴가민가하면서도 은근히 기대된다. 서로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다 강물처럼 아깝게 흘려보낸 세월이 몇 년인가. 많은 전문가들이 “테이블 위에 모든 것을 올려놓고 지혜롭게 일괄타결하라”고 주문한다. 예컨대 통일준비위원회 정종욱 부위원장 같은 이도 시야가 과거와 좀 달라진 듯하다. 최근 그는 북한 붕괴나 흡수통일론은 비현실적이라고 하고 있다. 정 부위원장은 언론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 체제를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평가하고 “평화공존과 통일을 추구한다면 북한을 코너로 몰아 고립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를 해야 핵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대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북핵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현실을 인정하고 단계별로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김영삼 정부 당시 ‘NPT탈퇴’라는 뒤통수치기를 북한으로부터 제대로 맞았다고 할 인사다. 그래서인지 다소 극우보수적인 대결외교성향을 보였던 것으로 평가받던 이다. 그가 이렇게 변모했다. 그것은 YS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라는 직책에서 일하며 얻은 뼈아픈 교훈에 따른 것인지도 모른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같은 아쉬움이 담겨 있는 언급일까.
두 정상에 대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5월 전승기념행사에 동시 초청해 놓은 상황이다. 그러나 누구의 중재나, 국제행사가 열리는 제3국 모스크바 같은 장소에서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회담 장소는 서울도 좋고 평양도 좋다. 아니면, 상징적 의미가 있는 판문점이라도 좋다. 시기도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형식이나 절차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남북 두 정상과 당국자들의 마음자세이다. 서로 체제와 사회가 다른 만큼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북 정상이 모처럼 만나더라도 흐름에 떠밀려 만나거나 못 이기는 척 만나는 만남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취적, 적극적, 미래지향적이며, 내용 있고 의미 있는 만남이면 좋겠다. 물론 남북한 정상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좋지만 실무선에서 차근차근 준비해 빛나는 열매가 일궈지는 정상회담이 돼야 하겠다. 현재 남북대화의 일차적인 목적은 이산가족상봉, 경제·문화교류 등 남북협력과 신뢰회복 등에 있다. 여기에 서로 체제가 다른 남북한이 70년 성상 고착화된 분단 상황에서 한 걸음 나아가 통일로 가는 새 통로를 여는 것일 터. 소중한 기회에 당국자들이 절대 소모전적인 밀고 당기기나 되풀이하면 안 된다. 사전준비에 공식회담, 비공식회담을 가릴 일도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선언’ 등 무슨 알맹이 있는 것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비밀회담이 성공적인 정상회담에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미래를 상상하기만 해도(아직은 좀 황당하지만) 가슴이 뿌듯하다. ‘중국이 아닌 북한 쪽 코스로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오른다. 주말이면 개성, 박연폭포, 묘향산까지 가족 드라이브를 즐긴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 경원 운하에 몸을 싣고 원산 해수욕장으로 피서간다. 우수한 북한지하자원을 활용한 제조업이 지구촌에 대박신화를 터뜨린다. 남북정상 간에 핫라인이 가동돼 수시로 전화통화한다. 남북정상은 이미 발표한 평화선언을 기초로 통일 의정서에 사인한다. 세금 걱정 없는 통일한국이 세계에 우뚝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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