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여성의 활약은 3.1운동 시기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면 이전에 한국여성의 독립활동은 정체돼 있었던 것일까? 필자는 3.1운동 시기 여성독립활동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전국 각지에서 활약했던 여학생 독립활동에 주목했다.

1919년 3.1운동은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전개된 민족적 항일운동이자 사회변환의 일로였다. 당시 신교육을 받았던 여학생의 활약도 주목되는데, 이들에 의해 전개된 신여성운동은 구시대적 관습을 타파함과 동시에 정체성 확립에도 주력했다.

조선 후기는 자유와 민권사상이 밀려들어오면서 해외 선교사가 등장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교육기관의 설립도 활발했다. 물론 선교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교육기회가 확대되면서 봉건체제하에 억압돼 있었던 한국여성은 변화의 일로에 서게 된다. 전통적 관습과 제도 하에서 주체성을 상실했던 이들에게 부여된 교육기회로 이들은 주체성 회복과 민족·국가·개인의 연결고리를 인식하게 됐다.

이렇게 1900년을 기점으로 근대 여학교는 여성의 자존감과 주체 의식을 확립시키는 데 일조함은 물론 여성의식변화를 이끌었다. 근대 여학교의 건립이 1880~1900년에는 서울5, 평양2, 부산1, 인천 1개교의 사립학교를 시작으로, 1900년-1910년에는 전국 55개교가 건립됐고, 1910년 이후에는 사립여학교 17개교, 공립여학교 10개교, 여성잡지 4개사 등으로 확대됐다. 이처럼 근대 여학교의 확산은 3.1운동에서 여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배경이 됐다. 그 리고 3.1운동이후 한국여성은 독립활동의 주체로 당당히 자리매김 했다.

이런 변화는 근대시기 여성단체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근대시기 여성단체의 확산은 근대 여학교에서 수학했던 지식인이 뒷받침 돼 각 분야로 확대됐다. 1880~1900년에는 사회문화단체, 종교단체, 자선단체, 교육단체가 구성이 됐고, 1900~1910년에는 친목단체, 교육단체, 자선단체, 사회문화단체가 추가 구성됐다. 그리고 1910년~1920년에는 애국봉사단체, 유학친목단체, 애국단체, 친목단체, 교육단체 등으로 확대됐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근대여학교에서 수학 하며 민족, 자유, 평등을 염원했던 여학생은 3.1운동 참여와 여성단체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자존감을 고취시켰다.

시대의 물꼬를 트는 것은 시대변화를 이끄는 주체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지금껏 우리는 시대변화를 응시할 때 늘 리더의 존재와 그 역할에만 주목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지금껏 주목하지 못했던 이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주목받지 못했던 학생들, 바로 일제강점기 저항의 대열에 섰던 여학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민족저항정신은 교육기관 에서 잉태되고 암울한 시대를 뚫고 독립활동으로 일어섰다.

외세에 맞서고 시대흐름에 저항했던 여학생! 그들의 항일투쟁의 모습이 바로 한국여성 독립운동의 맥락으로, 오늘날 진취적인 한국여성으로 거듭났음에 다시금 주목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하기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