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초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자 제 왕은 조나라에 순우곤을 사자로 보내 구원군 10만 명에 전차 천 대를 지원 받아 왔다.

초나라는 제나라의 그런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어둠을 틈타 군대를 철수시키고 말았다.

제 왕은 아주 기뻐하며 후궁에서 주연을 베풀고 순우곤을 초청하여 술을 내렸다. 그 자리에서 왕이 순우곤에게 물었다.

“선생은 술을 얼마나 마셔야 취하는가?”

왕의 말에 순우곤이 대답했다.

“한 말에도 취하고 한 섬에도 취합니다.”

“한 말에도 취하는데 어떻게 한 섬을 마실 수 있는가? 그 이유를 말해 보오.”

“대왕의 어전에서 술을 받는다고 합시다. 옆에는 사법관이 있고 뒤에는 감찰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저는 겁에 질려서 한 말도 마시기 전에 취하고 맙니다. 귀한 손님이 아버지를 찾아왔다고 합시다. 저는 어복을 갖추고 예의범절대로 그 분을 맞이해야 합니다. 때로 술을 받는데도 그 손님의 장수를 빌며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저는 두 말도 마시기 전에 취하고 맙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고 합시다. 추억의 이야기로 흥을 돋우고 부담 없이 지껄이면서 마시면 대여섯 말은 족히 마십니다. 마을의 잔치에서 마신다고 합시다. 그날은 남녀가 각자의 생각대로 자리를 잡고 서로 상대를 붙들고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지요. 나중에는 주사위까지 던져 상대할 여인을 정하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남의 여자 손목을 잡거나 곁눈질을 한다 해도 누가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귀걸이와 비녀가 흩어집니다. 저도 그만 유쾌해져서 술을 여덟 말 정도 마시며 한 번은 취해 떨어집니다. 해가 지고 잔치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남은 주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남녀가 같은 자리에 모여듭니다. 신발은 흩어지고 접시와 술잔도 어지럽게 흩어지고 이윽고 불이 꺼집니다. 최후로 나만이 주인의 만류로 남아 문득 어둠 속에 손을 내밀어 보니 내던져진 옷에 닿아 거기서 부드러운 여인의 체취가 풍깁니다. 그때에는 저도 완전히 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해 한 섬을 마신 것입니다. 술이 지나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지나치면 슬픔이 된다는 말이 있지만 정말 만사는 그와 같습니다.”

사물은 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나치면 반드시 쇠약해진다. 순우곤은 그렇게 말하면서 왕을 꾸짖는 것이었다.

순우곤의 말에 왕이 답했다.

“참으로 좋은 말을 해주었소.”

그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베풀어지던 연회는 열리지 않게 되었다. 만약 연회가 열리는 날은 순우곤은 언제나 왕의 옆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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