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스텔라’는 상상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준다. 영화라는 게 어차피 허구이고, 관객들도 그 사실을 알고 보지만, 그럼에도 그 ‘허구’의 장면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처음부터 관객은 그 허구의 세계에 울거나 웃을 준비를 하고, 그 허구의 세상이 나를 얼마나 웃기고 얼마나 눈물나게 해줄지 기대를 거는 것이다. 영화 속 허구는 약속된 허구이고, 그것은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지고, ‘인터스텔라’는 상상력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모험 영화들이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암울한 현실을 타개할 영웅이 등장한다.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절박한 상황에서 거창하게는 인류애, 작게는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내 한 몸 던지는 홀아비 비행 조종사의 대담한 모험이 이야기의 뼈대다. 광활하고 신비로운 우주의 모습들이 화면 가득 펼쳐지고, 위기의 순간들을 헤쳐 나가는 장면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영화에서 시종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현실로 닥칠지도 모를 황폐한 지구 환경이나 새로운 인류의 터전을 찾아 우주로 튕겨 나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대한 메시지보다는,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류애라는 거창한 사랑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현실적으로 잘 와 닿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며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버지들도 ‘인터스텔라’ 속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잘생기거나 우주선을 몰고 블랙홀을 달리는 멋진 아버지는 아닐지언정, 토끼 같은 자식들 먹여 살리겠다며 매일 달리고 달리는 우리의 아버지들인 것이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별 볼일 없는, 그렇고 그런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란 이름으로 죽을 각오로 몸을 던지는 용감한 아버지들이다.
싸이의 ‘아버지’란 노래에 이런 게 나온다.
“한평생 처자식 밥그릇에 청춘 걸고, 새끼들 사진 보며 한 푼이라도 더 벌고, 눈물 먹고 목숨 걸고 힘들어도 털고 일어나, 이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아빠는 슈퍼맨이야 얘들아 걱정 마.”
“위에서 짓눌러도 티낼 수 없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 와도 피할 수 없네, 무섭네 세상 도망가고 싶네, 젠장 그래도 참고 있네, 맨날 아무것도 모른 채 내 품에서 뒹굴거리는 새끼들의 장난 때문에 나는 산다, 힘들어도 간다,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갈수록 싸가지 없어지는 아이들과 바가지만 긁는 안사람의 등살에 외로워도 간다, 여보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인터스텔라’ 속 아버지처럼, 자식을 위해서라면 우주 아니라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아버지들이 수두룩하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그런 마음, 그런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