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15일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군사당국자회담을 열었다. 물론 별 성과 없이 끝나긴 했지만, 만남 자체는 큰 의미가 있다. 남북 군사회담에서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7년 만의 일이다. 그만큼 쉬운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남북 간의 군사회담은 모든 대화 채널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금방 만나서 금방 성과를 낼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장성급의 군사회담까지 합의한 남북 양측의 진정성과 결단은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은 이번에도 비밀주의가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긴장국면에서 갑자기 대화국면으로 가서 그런지 우리 당국의 대응이 석연치 않아 보인다. 북한에 보낸 전통문을 며칠 후에 밝히는가 하면,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이달 30일에 개최하자고 제안한 것도 여태껏 비공개로 하다가 뒤늦게 공개했다. 무엇을 왜 숨기려고 하는지, 아니면 북측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이번 군사당국자회담도 비밀리에 추진했다. 북한 황병서 군 총치국장 일행이 갑자기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고 뒤이어 서해상에서, 또 민간단체의 전단살포를 계기로 총격전까지 벌어진 상황이라면 군사당국자회담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뉴스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숨겼다. 심지어 야당 의원으로부터 관련 내용이 전해졌고 또 바로 그 시간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군사회담이 진행되고 있어도 통일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과거 민주정부 10년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 비밀주의를 질타해 왔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대북정책 대선공약으로 남북관계의 투명성과 공개성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올초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도 북측이 비공개로 하자고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비공개를 거부했다. 심지어 북측이 비공개를 요구했다는 말까지 국민에게 설명했다. 그랬던 우리 정부가 이번에는 진행 중인 남북군사회담까지 비밀로 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며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대북정책의 원칙은 어디로 갔는가.

남북관계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모든 것을 국민에게 공개할 수 없다. 국익과 전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비공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별의 기준도, 그 사안의 경중도 모두 국민의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숨길 것을 숨겨야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그런 언행은 비밀이 아니라 불신과 불통에 다름 아니다. 내가 하면 원칙, 남이 하면 반칙이라는 오만한 태도는 바꿔야 한다. 원칙도 원칙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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