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살다보면 가끔씩 어떤 사상(事狀)에 대해 이해되지 못할 경우가 있다. 보도기사를 읽거나 사회여론화 과정에서 사안의 결과물을 접할 때에 더 좋은 해법이 있음직한데, 대충 끝나거나 그 반대방향으로 쏠리는 현상을 만날 때다. 세상만사가 좋은 방향에서 매듭지어지는 게 아니고 또한 필자가 요모조모 따질 계제(階梯)도 아닌지라 잊어버린다. 그것은 의지를 곧추세운 파고듦보다 잊어버림의 출구 전략이 나름대로 편하다는 생각에서인데 그래도 아쉽기는 하다.

자유만끽이 가져다주는 현상이랄까. 사람들은 개인적 습관, 시류에 익숙해지면 사회생활의 기본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개인 일과에서 부족해도 별 어려움이 없고 다소 불편하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가 되다 보면 일상의 일들이 자유재(自由財)처럼 착각하기 십상이다. 이 경지가 되면 타인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듯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제어받지 아니하려는 국외자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러한 아웃사이더(Outsider)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웃사이더는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바, 개인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 민주주의 하에서 적당하게 민주주의를 구가(歐歌)하며 살아가면서도 삶에 절대적 방패막이가 되는 민주주의 자체를 망각하는 현상마저 보인다. 그들은 국가권력이나 제도가 특별히 자신을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대체적으로 사회현상에 무관심한 편인데 어쩌면 현 시대를 어렵게 살아가는 소시민이거나 변방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자유, 개인주의가 팽배된 사회일수록 무관심 현상이 심화된다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본다. 며칠 전 서울 시내의 백화점에서 최대 70%를 싸게 파는 ‘해외 유명브랜드 대전’이 열려 73개 명품 브랜드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고 한다. 또한 지역의 마트 등에서 반값 세일 때에도 수요자들이 모여들기는 마찬가지로 이러한 현상들은 일부 계층만의 선호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가지는 생활 지혜이니 일반적 사회현상과는 견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긴 한데, 국민생활에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각별하다. 우리 정치제도에서 정당의 중요성과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지만, 정작으로 그 정당을 이루고 있는 뿌리세력이요, 정치적 결사체를 이루는 국민은 정당에 대해 무관심하니 기현상이다. 선거기가 닥치면 정당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선거가 끝나면 정당에 대한 급랭해지는 현상은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으로서 국민의 정치의사 형성이 활발하지 않은 탓이다.

현대정치는 대의제 민주주의요, 그 요체는 정당이다.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의사형성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국민과 함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정당이란 ‘큰 마당’에서 정치나 국가작용에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은 없이 아예 포기하거나 정치인, 정당인의 권리로 넘겨버린다. 정당 지도자나 당무 수행자 역시 국민의 포기된 권리 위에서 정당제도의 특권을 누리며 권한을 누리고 있는 것이 우리 정당정치의 한 단면이다.

국민이 정당에 관해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정당인에게만 맡기는 것은 결국 정부 비판과 정책적 대안 요구 세력들의 감소로 이어진다. 그런 경우 대의민주주의의 중요한 공적기능 수행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불가피하고 민주주의 발전에도 저해가 된다. 정치의사형성에 활발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정부·여당과 야당을 호통쳐야 할 국민이 뒷전으로 물러나 무관심을 보이는 만큼 선진 정치는 정체되고, 선동 정치꾼들이 득세하는 결과로 못난 정치가 횡행할 뿐이다.

그 교훈은 정당제도가 잘 발달된 미국의 경우에서 잘 알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1892∼1971) 교수는 평생을 미국 정치학을 연구하고 정당발전에 기여했던 학자요, 정치가로서 그의 이름을 딴 ‘샤츠슈나이더상’은 미국 정치학 최고의 박사 학위논문에 수여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정당이 국가발전 주체로서 국민행복을 가져다주게 하는 데 크게 공헌한 샤츠슈나이더 교수가 살아생전 자신의 활동을 회고하는 글을 남겼는바 유의미하다.

“내가 나의 학문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랫동안, 더 열심히, 더 일관되게, 더 열정적으로 정당에 대해 말해왔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가 평생 수행해온 정당에 관해 일관된 학문적 정수나 실천은 선진국 미국이 좋은 정치, 좋은 정당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온 업적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정치 현실을 본다면 국민이 대중적 민주정치의 최대 자랑인 정당을 지배해야 하건만 우리는 정당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 채 아웃사이더로 헤매고 있으니 아쉬움이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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