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정성근 전 후보자가 자진사퇴한 직후인 17일 유진룡 전 장관에 대한 면직을 재가해 현재 문체부 장관은 공석인 상태. 2~3명의 문체부 근무 공무원 출신 인사가 후보자군에 포함돼 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재·보선 이후로 장관 후보자 발표를 미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것이 재·보선 출마자에 대한 향후 보은 인사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야권의 공세가 있었고, 이에 맞불을 놓듯 박 대통령 휴가 중에 새 후보자에 관한 보도가 나온 것이다. 한 언론사 정치부장은 “원래는 안대희 국무총리, 문창극 문체부 장관, 정성근 청와대 홍보수석 등으로 집권 제2기 내각 진용이 검토됐던 것으로 들었다”라며 “그러나 인사참사로 빚어질 만큼 인사의 난맥상이 잇따라 불거지자 언론의 반응과 각계 평판을 먼저 들어본 후 최종재가하는 이른바 ‘언론 검증 후 지명’ 방식으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후보자로 커뮤니케이션론을 전공한 교수가 유력하다고 보도된 데 이어 이번에 영상 광고홍보 언론정보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교수가 다시 거론되고 있는 것은 박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제2기 내각의 창조경제 및 국가개조, 한류&문화융성 드라이브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직 검증절차가 남아 있다. 만약 ‘신상털기’ 과정을 넘어 K씨가 수장이 된다면 문체부가 활기 넘치고 역동적인 부처로 거듭날지 모른다. K씨가 지닌 미대 교수 특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번뜩이는 심미안에 관심이 간다. 그러한 장점이 그간 경직된 것으로 평가된 관료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문체부 장관으로서의 무게감은 떨어진다. 한 홍보분야 관계자는 “영상 홍보 전문가라면 콘텐츠진흥원이나 영상물등급위원회, 혹은 선거 캠프 홍보 전문가 등에 적임자이지 문체부라는 거대 조직의 리더로서는 미지수”라고 평했다. 한 문체부 직원도 “과거 예술인 몇몇이 문화부 수장을 맡았으나 전체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데 있어 관료 출신 장관에 비해 크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 아이디어 공모를 하거나 전문가를 분야별로 실무에 발탁해 활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가운데 필자에게는 29일 아침 신문 글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김용환 전 문화부 차관이 쓴 <문화파워 시대의 문화행정>이라는 제목의 언론 기고문이다. 기고문은 “문화파워 시대에 걸맞는 융합행정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문체부는 교육부 교통부 체육부 국정홍보처 등 다양한 부처와 원활한 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체부는 문화예술, 관광, 체육, 미디어, 도서·출판, 종무, 국정홍보 등 크고 다양한 영역의 업무를 실·국 단위에서 수행하고 있다. 그는 “동일 부처 내에 다양한 업무 영역이 공존하는 만큼 실·국 단위 협업체계가 강화돼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업무협의 체계를 상설화하는 등 조직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 전 차관의 말을 곱씹어보면 문체부라는 큰 국가 시스템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다른 정부 부처와 마찬가지로 문체부 조직을 잘 아는 이가 장관을 맡아야 할 것 같다.
이런 가운데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쏟아낸 쓴소리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관료 사회를 색안경 끼고 보는 시각을 경계했다. 언론인터뷰에서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후속 조치와 관련해 “산하기관이나 이익로비단체 사이의 뇌물 스캔들 문제를 차단할 해법을 찾는 노력은 하지 않고 ‘관피아(관료+마피아)’라는 말로 과잉, 확대 해석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관료를 도둑으로 몰아가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일부 로비스트화된 공직자의 문제가 침소봉대돼 ‘관피아’ 문제가 모든 문제의 핵심인 것처럼 돼 있지만, 사실은 ‘정피아(정치+마피아)’가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홍 지사는 이어 “정말로 국가개조를 하려면 정치·경제·문화·외교·국방 등 모든 분야의 국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며 거기에는 개헌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일리 있는 말 아니겠는가.
인재등용이 ‘그들만의 잔치’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 당초 장관으로 유력한 것으로 거론됐던 K씨는 H대 교수. 공교롭게도 현재 문체부 2차관도 H대 출신이며, 1차관은 K교수가 재임 중인 H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여기에 1998년 박 대통령 국회 입성 때부터 보좌관으로 몸담아와 이른바 핵심 ‘문고리 권력’으로 지칭되는 청와대 비서실 총무비서관도 H대 출신이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한다. 혹은, 사실일지라도 우연의 일치였으면 좋겠다. 아무튼 인맥 학맥을 넘어 인재풀과 인사권자의 시야가 축구의 ‘히딩크’처럼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