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한국축구대표팀의 2014 브라질월드컵 경기가 모두 끝나자 신문, 방송, 인터넷, SNS 등 주요 미디어들이 마치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일제히 예선 탈락한 한국팀을 두들겼다. 홍명보 감독의 선수 선발과 기용, 작전 운용 능력, 리더십, 한국 축구의 경쟁력 등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관점과 시각을 갖고 비판하는 데 열을 올렸다. 마치 한국팀의 예선탈락으로 마음이 상한 국민들을 달래줄 듯이 부정적인 기사 일색이다.

미디어들의 이런 관행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필자가 스포츠 기자로 활동했던 1980년대 중반이후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팀이 부진한 경기 내용을 보일 때는 늘상 그랬다. 특징은 건전한 비판보다는 특정 타깃을 겨냥하는 질책성에 가까운 기사와 분석 등이 많았던 것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차범근 감독은 예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5-0으로 완패한 뒤 국내 언론들의 집중적인 비난성토를 견디지 못하고 사퇴하고 말았다.

이번 브라질월드컵도 미디어들이 한국 축구를 들었다 놨다 했다. 이번 대회 직전 예선 조편성이 역대 사상 최고의 꿀조라며 낙관하는 분위기 속에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처음으로 원정 16강에 진출했던 한국 축구에 대한 기대감을 8강 진출로 올려놓았고, 막상 무기력하게 알제리에게 완패를 당하고 끝내 예선 탈락이 확정되자 일제히 한국 축구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는 기사로 도배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2010 남아공 대회에서 16강에 올랐으니, 8강 정도를 해야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며 인위적으로 목표를 설정한 것부터가 넌센스라고 할 수 있었다.

미디어가 보이지 않는 권력처럼 한국 축구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하며 무리한 요구를 하는 특이한 현상을 미디어 훌리거니즘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축구 경기장에서 광분한 팬들이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패하면 분을 참지 못해 상대팀 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거리에서 무분별한 시위를 하며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희생양을 찾는 이들을 훌리간이라 부르고, 이러한 문화를 훌리거니즘이라고 지칭하는데, 한국 축구를 대하는 미디어의 행태가 이와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좋은 때는 마치 모든 것을 내줄 정도로 일방적인 구애를 퍼부었다가, 기대치에 벗어나면 무차별 융단폭격을 해대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 직전 일부 미디어들은 홍명보 감독의 선수 선발을 놓고도 비난하는 기사를 썼으며, 여러 전술과 전략에 대해서도 여러 축구 전문가들을 내세워 승리를 위한 충고라며 끼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대회 시작 이후에도 인터넷 미디어, SNS 등을 통해서도 마치 홍 감독과 선수들을 훤히 꿰고 있는 것처럼 무리한 기사와 언질을 쏟아놓기도 했다. 경기는 선수와 감독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참견하고 훈수를 두는 미디어들의 고질적인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 축구의 문화가 선진화되기 위해선 이제 이러한 미디어의 삐뚤어진 행태는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된다. 미리 정해진 목표와 방향을 세워놓고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마구잡이로 거칠게 비판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드러난 사실을 합리적 판단과 분석력을 갖고 과학적으로 세밀하게 조사한 뒤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한국 축구의 발전 방안 등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드러난 한국 축구의 현실은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한다고 고쳐질 문제가 아니다.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전반적인 축구 문화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운동에 대한 해독력을 익히기도 전인 초등학교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기능적인 기술만을 터득하고, 오로지 승리하는 것만을 추구하는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바꾸지 않는 한 한국 축구는 세계 경쟁력을 결코 확보할 수 없다.

미디어들은 한국 축구가 참다운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이탈된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디어들이 철저히 사실에 기반한 정보와 소스를 바탕으로 한국 축구의 앞길을 밝혀주는 노력을 기울일 때, 한국 축구의 희망은 밝아질 수 있다. 더 이상 미디어 훌리거니즘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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