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적 제55호)은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세운 교육의 장이다. 국내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1542년 풍기군수로 부임해온 주세붕은 순흥이 고려 말 원나라에서 주자학을 들여온 안향(1243~1306)의 고향임을 알고, 안향을 모신 사당 회헌사(晦軒祠)를 세웠다. 1543년에는 유생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주자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모방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고 안향을 배향했다. 명종 3년(1548) 퇴계 이황(1501~1570)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뒤, 1550년 조정에 건의해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사액을 받게 되었다.

죽계천 건너편에 퇴계 이황이 자주 찾아와서 시를 짓고 즐겼다고 하는 정자 취한대(翠寒臺)가 있고, 그 아래에 주세붕이 직접 바위에 새겼다는 ‘공경할 경(敬)’자와 퇴계가 새긴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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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무왕 16년(676)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 당시 부석사가 창건됐다. 이 사찰에서 유명한 건물은 본당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과 더불어 곡선의 멋을 살린 무량수전에서 앞을 내다보면 저 멀리 소백산맥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을 걸치고, 병풍처럼 펼쳐진 수많은 봉우리를 보니 ‘무량(無量, 셀 수 없이 많음)’이란 단어가 마음에 와 닿는다. 배흘림기둥에서 달리는 소백산맥을 본 방랑시인 김삿갓은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을 볼 수 있을까”라는 시를 읊었다.

부석사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있으나 그중 뜨인 돌이 된 선묘 낭자와 의상대사의 살아있는 지팡이 이야기가 유명하다. 사찰의 이름이 된 ‘부석(浮石, 뜨인 돌)’은 의상대사를 흠모한 선묘 낭자의 애틋한 이야기다. 무량수전 왼편에 있는 부석(浮石)이 바로 선묘 낭자가 띄운 돌이다. 자연석 서너 개가 서로 뒤엉켜 판판한 큰 돌을 받치고 있다.

부석사는 자연과 불법(佛法)의 조화가 이뤄지는 곳이다. 속세에서 잠시 벗어나 가람 이름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뇌면서 극락에 다다른다. 그 극락에서 자연경관을 바라볼 때 비로소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온다.

(글: 김지윤 기자, 사진촬영/편집: 김미라 기자)

▲ 국내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紹修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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