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복 곱게 차려입어 진지해진 졸업생들
“불건전한 뒤풀이 생각할 수도 없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추위가 주춤했던 13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청사초롱이 길을 안내하는 곳으로 가니 갖가지 아름다운 색을 뽐내는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90여 명 가량 모여 있다. 이곳은 제91회 졸업식이 열리는 서울시 은평구 통일로에 있는 동명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다.
과거 ‘알몸 뒤풀이’ ‘달걀‧밀가루 던지기’ 등 불건전하고 폭력적인 졸업식 뒤풀이 문화가 사회적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 학교에선 경찰이 출동해야 할 만한 눈살을 찌푸릴만한 ‘삐뚤어진’ 성인 신고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띠를 두른 여고생들의 안내로 졸업식장에 들어섰다. 졸업식이 열린 체육관으로 형형색색의 꽃다발을 든 가족들과 지인들이 들어섰다. “우와 대박이다” “한복을 입으니 정말 예쁜데?” 참석자들이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곱게 차려 입은 우리의 딸과 친구들을 사진으로 간직하려는 열정은 취재현장을 방불케 했다. 졸업식이 열린 체육관은 교복 대신 한복을 입은 졸업생들이 줄 맞춰서 있었기 때문. 나뭇잎만 떨어져도 웃음이 나온다는 여학생 특유의 평소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예쁘게 차려 입고 곱게 화장한 채 성인이 되길 기다리는 소녀처럼 보였다. 한울타리에서 꿈과 희망을 키우며 같이 먹고 생활하던 학우들은 서로 옷고름을 매주며 식이 시작하길 기다렸다.
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여자의 성인례인 ‘계례(筓禮:)’를 올린 뒤 졸업한다. 계례는 여자가 쪽을 지어 올리고 비녀를 꽂아 성인이 되었음을 뜻하는 의례다. ‘사례편람’에 보면 혼례 때나 15세가 되면 계례를 행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날도 졸업생들은 계례를 올리기 위해 한복을 차려입었다. ‘옷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다르다’는 말처럼 고운 한복을 입은 졸업생들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옆줄에 앉은 2학년 학생들과 대조된 모습이다.
졸업식을 위해 한복을 맞춰 입었다는 박예은(20,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양은 “곱게 한복을 입으니 밀가루(던지는 문화)는 생각도 못 한다. 성인례를 올리는 것이 학교전통이라는 게 자랑스럽고 기쁘다”며 “한복을 입고 부모님께 절도 할 수 있도록 해준 학교 측에 고맙다”고 말하며 밝은 미소를 보였다.
선배들의 단아한 모습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올해 2학년이 되는 김지우(18,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양은 “성인례를 올리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니 내년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며 “다른 학교와 졸업식을 하니 더 특별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동명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가 성인례로 졸업식을 이어 온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까지 학교에선 졸업식과 관련한 사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학교 측은 사회에 나가는 학생들이 계례를 통해 겸허한 마음으로 성인이 돼서 나갔으면 하는 취지로 이 같은 졸업식을 열기 시작했다.
“모든 계자들은 좌‧우측과 뒤쪽 부모님을 향해 서시오. 오늘 성년이 된 계자들은 지금까지 여러분들을 키우고 이끌어주시며, 이 자리에서 축복해주시는 부모님과 선생님, 내빈 여러분께 사배를 드리시오.”
사회자의 목소리에 맞춰 학생들이 절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부모님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복자(51, 여,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씨는 “집에서는 늘 아기 같은데 지금 보니 ‘많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 이 마음 이대로만 살아갔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학교 측이 졸업생들에게 준비한 식순에는 없는 깜짝 선물이 공개됐다. 학생회장과 선생님들이 보내는 영상편지가 바로 특별한 선물이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조신하던 졸업생들은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학생과 학우, 선생님들과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동명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졸업식에는 논란이 됐던 강압적인 졸업식은 없었다. 교정을 떠나는 이와 남는 이들은 이별의 아쉬움만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