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의 예산 낭비가 정도를 지나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과목 8번 문항 오류 논란과 관련해 수험생 59명이 소송을 제기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평가원 당국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법무공단을 제쳐두고 유명 대형 로펌을 선임하고 총 6명의 변호사에게 소송 대리를 맡겨 예산 낭비 말썽이 일고 있다.
정부는 2006.12.20.자로 ‘정부법무공단법’을 제정해 시행해오고 있는 중이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행정기관 및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공단체(이하 국가 등)가 소송의 주체 또는 객체가 될 경우 국가 등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행정의 합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만든 법무공단이다. 대다수 정부 기관들은 소송에 임할 경우 민간 로펌보다는 주로 국가 공인 로펌인 정부법무공단을 이용하고 있는바, 변호사 수임료가 저렴하고 정부법무공단이 행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로펌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입수능시험 세계지리 과목 8번 문항 오류 문제에 대해 현직 지리교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43명 가운데 83.2%가 ‘출제오류’라고 답했고, 9.8%만이 ‘출제오류가 아니다’라는 응답을 보였다. 하지만 16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수능 출제오류 아니다”로 판결이 났다. 재판부는 논란이 된 문항과 관련해 “해당 지문은 비교시점에 따라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을 뿐, 명백히 틀리지 않는다”는 판시인데,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잘못된 문제를 내서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줘놓고서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항변이다.
법원 판결로 평가원이 한숨을 돌렸고, 원고들은 19일부터 정시모집이 시작되기 때문에 시간상 급박해 항소의 실익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국가기관의 시험 출제와 관련해 논란이 불거졌고,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평가원이 수험생과 학부모들에 대해 갑질을 해댄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예산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평가원이 정부법무공단 수임료 300만 원 정도보다 20배 이상이나 높은 유명 대형 로펌을 선임해 수험생들에게 과잉 방어하고, 국민혈세를 낭비한 것은 아무리 보아도 정도(正道)를 지나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