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惡寒)
서상만(1941~ )
위층 노인이 떠듬떠듬 또 계단을 내려왔다
일찌감치
가을바람 한 자락이 동호수를 못 찾고
노란 은행잎을 복도에 내려놓고 간다.
설마 네게 온 것은 아니겠지
[시평]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거리, 첫추위에 잔뜩 몸을 웅크린 사람들 낙엽 진 나무 곁을 지난다. 가을은 젊은이들에게는 낭만과 추억의 계절이지만, 나이가 든, 그래서 이제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는, 찾아오는 첫추위와 함께 을씨년스러운 계절이기도 하다.
위층 노인이 떠듬떠듬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추워진 가을 거리로 무슨 볼 일이 있어 나가는 모양이다. 아직은 무더웠던 여름의 기억 다 사라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찾아온 추위. 그 첫추위에 오한(惡寒)이라도 걸리지 말아야지. 가을바람 한 자락이 동호수를 못 찾고 노란 은행잎을 복도에 내려놓고 간다.
스산한 가을바람 속, 낙엽들 아파트 복도 어지러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다. 떠듬거리는 위층 노인의 어쭙잖은 발자국 마냥.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하기
관련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