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물리적 압박 등으로
복합적 요소 작용해 은둔생활
은둔자 규모 최대 33만 8천명
가족·보호자, 경제적 부담 져
빈곤 고착, 돌봄 부담 장기화
개인·가족 넘어 사회문제 발생
김홍걸 의원 지원법안 대표발의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야수를 사랑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가 완벽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대사다. 왕자는 저주를 받아 야수로 변했고 진정한 사랑을 나눠야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자신의 흉악한 모습을 사랑할 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좌절한다. 많은 사람들은 야수를 무서워하고 싫어하지만, 여주인공인 미녀 ‘벨’은 야수의 내면을 사랑했고 결국 왕자는 본 모습으로 돌아오게 돼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이 미녀와 야수의 줄거리다.
현실 세계도 야수와 같은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적지 않은 부류가 있겠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도 회자돼 온 ‘은둔형 외톨이’다. 이 은둔형 외톨이에게도 본의 아니게 정신적 충격, 물리적인 압박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낙인 효과로 인해 어두운 늪에 빠져 스스로 혼자 나오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가족을 넘어 사회까지도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은둔형 외톨이의 정의와 문제점
은둔형 외톨이란 사회·경제·문화적 요인 등으로 인해 집 등의 한정된 공간에서 6개월 이상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생활해 정상적인 학업 수행이나 사회 활동이 현저히 곤란한 사람을 뜻한다. 통계청 사회조사와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은둔형 외톨이 규모는 최대 33만 8691명부터 13만 1610명 정도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라고 이슈가 된 은둔형 외톨이는 국내에서 200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식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사회적 관심도 적었다. 2000년대부터 한국에서 관련 연구가 진행돼 왔지만 당사자들이 자신의 처지에 대해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은둔 생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2020년에 찾아온 코로나 사태로 거리두기 등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코로나 블루 등 사회성 문제가 대두됐다. 이에 따라 그 전부터 고립 생활을 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최근 니트족 등 청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도가 높아졌다.
문제는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들은 마땅한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온전히 그 가족과 보호자가 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는 점이다. 이에 따라 빈곤이 고착되고 돌봄 부담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들은 그 부담으로 더더욱 은둔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나타난 일본 은둔형외톨이 문제의 사례를 보면 1970년대 후반부터 청소년층의 등교 거부 문제가 거론됐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들이 차차 은둔형 외톨이로 발전하는 과정을 거쳤다. 1980년대 등교를 거부했던 청소년이 20대에 히키코모리가 됐고, 2010년 그들의 나이는 40대가 됐으며, 2020년에는 50대가 돼 일본 사회에 ‘8050 리스크’로 진화했다. 8050 리스크란 50대의 히키코모리 자녀가 80대 노부모의 연금에 기대여 생활하며, 부모와 자녀 모두의 생활이 망가지는 현상으로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한국의 사회 문제들 중 대부분은 일본에서 일어난 사회문제가 한국에서 재현이 된다는 경험적인 데이터로부터 은둔형외톨이 문제 또한 한국에서 재현됐고, 특히 ‘8050 리스크’ 또한 한국 사회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탈출 어려운 이유, 사회적 편견
은둔형 외톨이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것은 사회적 편견에 기인한다고 경험자들은 말한다. 경제활동을 시작하려해도 마땅한 이유 없이 긴 공백기를 지닌 경우 마치 낙인을 찍어버리는 듯 달갑게 바라보지 못하는 시선 때문이다.
한 사례를 보면 어릴 적 육체적·정신적 압박으로 인해 은둔 생활을 겪게 돼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갔으나, 은둔적 외톨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가장 큰 원인으로 이를 받아주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를 꼽았다.
17세부터 28세까지의 은둔 생활을 겪었던 김초롱(30)씨는 은둔하게 된 주요 계기 중 한 가지로 ‘가정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이었다고 한다. 김씨의 아버지는 IMF 사태로 사업 실패를 겪으며 큰 빚을 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알코올에 의존하며 가족을 상대로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다반사였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 바빴던 탓에 김씨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 역시 자녀 양육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었다.
김씨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폭력으로 인한 우울증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후군)에 시달렸다. 김씨는 “문제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로 성장 과정에서 여러 차례 부정적인 대인관계를 겪었고, 점점 무기력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됐었다”며 “학업에 전념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출결 관리조차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부터 학업과 성적에 대한 갈등이 심화했고, 여기서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과 비난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 자퇴를 희망했지만, 부모와의 타협 끝에 방송통신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됐고 그때부터 은둔을 하게 됐다고 김씨는 말했다. 대학교에 진학해도 우울증이 심해진 시기에 출결 부족으로 대학에서 제적을 당하게 됐다. 이로 인한 가정 내 갈등은 더 심화됐고, 23세가 되던 해 아버지와의 큰 다툼 끝에 흉기로 극단적 시도를 선택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가족들이 김씨가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고 그 당시 의사가 우울증이라고 진단하면서 부모에게 정신과 치료를 추천해줬다. 이후 치료를 받으면서 정신적 후유증을 천천히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은둔 생활이 장기화된 이유로 가정폭력·우울증보다 한 번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사람이 다시 사회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 전반적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력서를 제출했을 때 1년 정도만 공백이 있어도 그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씨의 경우 긴 시간 우울증을 치료하고서 ‘나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그런 김씨를 받아줄 만한 직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다못해 아르바이트 면접에서조차 ‘지금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을 나이는 아닌 것 같다’라는 소리를 듣고 다시 은둔해야만 하나 고민도 했다고 한다.
은둔형외톨이에 대한 지원은 정부 차원에서 각종 교육정책 관련 법령, 청소년 정책 관련 법령을 근거로, 지자체 차원에서 광주·부산시 등에서 조례를 제정해 일부 지원하는 실정이다. 아직 정확한 실태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세부적 기준이 명확하게 합의되지 못한 상황이다. 최근 김홍걸 의원(무소속)이 지원법안(제정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3년마다 실태조사를 실시하며 이를 기반으로 5년마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이 수립돼 있다. 또한 은둔형 외톨이를 벗어날 수 있도록 자조 모임과 가족 등에 대한 상담·교육 등 총제적 지원사업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처럼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움트고 있지만, 무엇보다 편견이 아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나 자신과 가족, 친구 등 어느 누구라도 야수가 될 수 있기에, 벨처럼 관심과 사랑을 가진다면 다시 상처받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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