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 버스웰 교수 “수기, 2백년 앞선 탁월한 문헌학자”

▲ 지난 3일 열린 대장경축전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제자들이 간담회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최영호 동아대 교수, 루이스 랭카스터 교수, 루이스 버스웰 교수 (사진제공: 대장경축전 조직위원회)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전 세계 인쇄술의 발전을 이끈 불경의 집대성 ‘고려대장경’에 대한 제작 과정 등의 기록은 매우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제작을 총 책임한 수기 대사에 대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최근 고려대장경의 제작 책임자 수기 대사가 서양의 문헌비평가 에라스뮈스보다 뛰어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기 대사는 고려대장경 제작에 총 책임을 졌던 것으로 전한다.

▲ 로버트 버스웰(Robert Buswell)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사진제공: 대장경축전 조직위원회)

지난 3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대장경축전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로버트 버스웰(Robert Buswell)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서양에서 근대 문헌비평의 아버지는 에라스뮈스(1466~1536)로 인정되고 있지만, 그의 신약 편집본은 기술상의 문제 때문에 신뢰성을 잃었다”며 “반면 에라스무스보다 200년 전 시대를 살았던 수기는 훨씬 유창하고 민완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버스웰 교수는 세계적인 한국학의 권위자이자 한국 불교 전문가로 꼽힌다.

이날 버스웰 교수는 “대장경 제조과정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만, 수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며 “동시대를 살았던 최자(1188~1260)가 쓴 찬사와 18세기 간행물인 ‘연산삼대장경연기(緣山三大藏經緣起)’에 팔만대장경 교감에서 수기가 한 역할을 언급한 정도가 전부”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이런 불분명한 언급 외에 수기라는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없으며, 아마도 앞으로도 수기는 신비한 인물로 남아있을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버스웰 교수는 수기를 ‘문헌비평이라는 정식기술을 최초로 실행한 선구자’라고 단언하면서 “수기야말로 한국 지성사의 중요 인물을 넘어 전 세계 지성사를 통틀어 최고의 업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기는 자신만의 교감원칙을 적용하면서 융통성과 직관을 적용함으로 서양 문헌비평가들이 초기 단계에 범하기 쉬웠던 많은 실수를 피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서양의 문헌비평가들이 성서의 교정판을 출간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파악한 것보다 이미 수백 년 전에 수기는 그와 같은 작업을 했음을 볼 때 훨씬 위대하다”고 평가했다.

지난 200년간 서양학계에서 발전된 문헌비평의 원칙 중에서도 수기는 일관성 있게 ‘내부 확률(intrinsic probability)’를 따랐다고 버스웰 교수는 전한다. 다시 말해 맥락에 가장 잘 맞는 독법을 채택한 것이다.

버스웰 교수는 “수기도 때로 ‘추측성 교정’에 가까운 것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상황에도 항상 이 문제를 후대의 현자가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는 경고를 달았다”며 “이런 것들을 통해 세속의 텍스트와 부처님 말씀을 구분하는 섬세한 선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성은 다시 한 번 입증된다”고 말했다.

그의 이와 같은 주장의 근거는 수기가 남겨 놓은 총 30권으로 구성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책에는 수기 자신이 이끌던 교감단이 수천 개 경전의 다양한 판본들을 어떻게 수집, 교감해 그러한 결과물을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전 과정과 대장경 편집에서 어떠한 작업들을 수행했는지 등을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책은 대장경 제작 전 과정에 대한 기록을 담은 현존하는 유일한 서적으로, 당시 동아시아의 다른 편집자들이 대장경을 어떻게 편집했는지 미뤄 알 수 있는 동아시아 대장경 편찬에 관한 중요한 기록으로 꼽힌다.

한편 이번 대장경축전 국제학술심포지엄에는 버스웰 교수를 비롯해 주제발표한 루이스 램카스터 버클리대 교수, 바바 히사유키 일본 불교대 교수, 최영호 동아대 교수 등도 참석해 대장경의 가치를 조명하는 주제 발표를 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하기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