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품질 변화 시점 80~90%로 늘어1년간 계도기간으로 두 가지 모두 표시식약처, 2000여개 품목 설정 사업 수행유통업계 ‘표시 적용 품목’ 확대 나서소비자·전문가 ‘극과 극’의 반응 보여“여유롭게 먹고 음식물 쓰레기 줄이고”“관리 미흡하면 식품 문제 생길 수도”
[천지일보=황해연 기자] 올해 1월 1일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표시제가 실시된 가운데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식품 날짜 표시법을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바꿨다. 이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표시된다. 단 1년간은 계도기간으로 두 가지가 모두 표시된다.
그동안 소비자가 유통기한을 식품의 폐기 시점으로 인식해 일정 기간 경과 제품 섭취가 가능함에도 섭취 여부를 고민하는 등 소비자 혼란이 빚어져 왔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도 식량 낭비 감소와 소비자 정보제공 등을 목적으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표시제로 전환함에 따라 식품 표시제도의 국제적인 규제 조화를 위해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게 됐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가능한 기한을, 소비기한은 식품에 표시된 보관 방법을 준수할 경우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의미한다.
1985년 도입된 유통기한은 38년간 시행됐으며 제품이 제조된 후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기간을 뜻한다. 유통기한이 도입되기 전 ‘식품위생법’이 만들어진 1962년에는 식품에는 ‘제조일자’만 표시돼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매한 식품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했었다.
그러던 중 1980년 소비자기본법이 마련되고 소비자보호위원회에서 식품류의 유통기한 표기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소비자 보호 시책’을 발표했다. 이후 과자, 면, 빵, 유제품, 식육 등의 제품에 단계적으로 유통기한 표기가 의무화됐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정도 앞선 기간으로 설정되는 반면 소비기한은 80~90% 앞선 수준이다. 이로써 유통기한 기준보다 더 오래 식품 섭취가 가능해진다.
소비기한 표시제를 시행함으로써 불필요한 식품 폐기와 추가 구매, 폐기 비용을 줄이는 등의 경제적 효과와 더불어 환경 오염 문제도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유럽과 미국, 일본, 호주 등 OECD 국가들은 모두 소비기한을 사용 중이다.
이러한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을 반기는 데 반해 또 한편으로는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소비기한은 음식을 최선의 상태로 보존해야 나오는 것으로 ‘유통이나 보관 방법에 따라 식품 수명이 줄어들 수 있다’ ‘식품 문제의 책임 소재도 소비자에게로 넘어올 수 있다’ 등의 문제들 때문이다.
◆보관 기간 얼마나 길어지나… 식약처, 참고값 제공
지난해 12월 초 식약처는 23개 식품유형 80개 품목의 소비기한 참고값 등을 수록한 안내서를 베포했다. 대표적으로 햄은 유통기한 38일에서 소비기한 57일로, 발효유는 18일에서 32일로, 두부는 17일에서 23일로, 생면은 35일에서 42일로, 과자는 45일에서 81일로, 과채음료는 11일에서 20일로 늘어났다.
안내서는 소비기한 설정실험을 자체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영업자들이 별도의 실험을 수행하지 않고도 참고해 활용할 수 있도록 마련됐으며 새로 시행되는 제도의 조기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도의 도입·시행에 따라 식약처는 2022~2025년 식품공전에 있는 200여개 식품 유형 약 2000개 품목의 소비기한을 설정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50개 식품 유형 약 430개 품목에 대해 소비기한 설정실험 추진에 먼저 나섰다.
50개 식품 유형으로는 ▲햄류 등 다소비 식품(13개 유형) ▲과자류 등 중소식품업계 요청 식품(10개 유형) ▲영유아용 이유식 등 취약계층 대상 식품(4개 유형) ▲빵류 등 권장 유통기한 대상 식품(23개 유형) 등이다.
이어 같은 달 말에는 1차 공개 때 없었던 9개 식품유형 21개 품목이 포함된 29개 식품유형 100개 품목의 소비기한 참고값을 추가 공개했다. 가공두부, 기타 어육 가공품, 김치, 김칫속, 떡류, 숙면, 알가열제품, 초콜릿 가공품, 캔디류 등이 처음으로 포함됐다.
대표적으로는 ▲가공두부 8~64일 ▲기타어육가공품 92일 ▲김치 35일 ▲김칫속 9~18일 ▲떡류 3~56일 ▲숙면 92일 ▲알가열제품 15일 ▲초콜릿 가공품 51일 ▲캔디류 23일 등이다.
식약처는 이달까지 250여개 품목에 대한 소비기한 참고값을 추가 공개할 예정이다. 이중 소비기한이 6개월 이상으로 예상되는 조미김, 건면, 추잉껌 등 12개 식품유형에 대해서는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발 빠른 준비 나서… 소비자 “기대 반 우려 반”
소비기한제 도입에 따라 식품업계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SPC삼립은 지난해 9월부터 제과·빵류·소스류 등에 소비기한을 표시하고 적용 품목을 확대 중이다.
오뚜기는 소비기한이 도입되는 70여개의 품목에 미리 적용했으며 CJ제일제당은 ‘고메 거멍 모짜체다치즈 핫도그’와 ‘비비고 특설렁탕’ 등 빵류·국물류 신제품 위주로 소비기한을 포장재에 표시했다.
롯데칠성음료도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를 포함한 9개 음료 제품에 미리 적용했다.
온라인 구매 시에도 적용됨에 따라 이커머스 업계도 이에 따른 준비에 나섰다. G마켓은 판매자들에게 소비기한 도입에 따른 변경 사항을 고지했으며 소비기한 정보 입력란 추가 등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소비기한 도입은 기업 입장에서 재고 관리 차원 등에 있어 더 편리한 면이 있다”면서도 “여름철에는 제품 변질에 더욱 주의해야 하고 유통 과정, 보관 방법 등을 잘 지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먼저 기한이 늘어남에 따라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고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부분에서다.
혼자 자취하면서 하던 걱정 중 하나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였다던 한수영(가명, 30대, 남)씨는 “유효기간이 음식의 마지막 기간인 줄 알고 음식물을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는데 기한이 늘어나면 좀 더 넉넉한 기간 안에 먹고 치우면 되기도 하고 버려지는 음식의 양도 줄어들 것 같아 여러모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2명의 어린아이를 키우는 원희경(가명, 50대, 여)씨는 “어찌 보면 음식이 어른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예민하고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소비기한을 통해 섭취 가능한 기간이 정확히 나오니 효율적인 것 같다”며 “유통기한이 지나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간혹 있어서 긴가민가하면서도 필요할 경우 나나 아이들이 먹은 적이 종종 있었는데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겠다”고 했다.
반면 소비기한이 길어진 만큼 방심하고 섭취했다가 오히려 식중독이나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문제가 생길 시 업체가 아닌 소비자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부분 등으로 인해 걱정이 더해진 소비자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보관 상태가 중요할 텐데 소비기한만 보는 건 그렇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괜찮다고 해서 찝찝하게 먹었는데 소비기한도 같이 표시되면 좋을 것 같다” 등 계도기간 외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둘 다 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문가 “명확한 기간 파악 ‘이점’ vs 식품 안전 문제 생길 수 있어”
전문가들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먹을 수 있지만 정확한 기준이 없었는데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부분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점”이라면서도 “식품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소비자는 유통기한 지나면 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다른 문제로 “마트의 냉장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비기한 이내지만 음식이 상할 수 있고 그럴 때 소비자가 구매해가면 식품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일부 마트의 경우 냉장 관리가 부실할 수가 있다”고 짚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마트 냉장 관리 기준이 마땅히 없다. 그러니 사업장에서는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정확한 기준이 없으니 이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각 지자체 내 식품위생과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고 냉장 관리를 위해 지원·교육 등이 필요하다”며 “냉장 관리에 대한 기준도 세우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오상 식약처 차장은 “실제로는 유통기한이 지나더라도 일정 기간 안전한 섭취가 가능하나 많은 소비자가 유통기한이 지나면 식품을 폐기해야 할지 고민한 게 사실”이라며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할 때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음식물 폐기량을 줄이면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탄소 저감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권 차장은 “음식 섭취 기한이 늘면서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며 “소비자들은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되면 각 제품의 보관 조건 확인 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냉장 보관 제품을 실온에 보관한다면 표시 일자까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당부했다.
식약처는 소비기한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도록 식품 유통·소비 단계에서 온도가 제대로 관리되는지 점검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대형마트·편의점 등의 오픈형 냉장고에 냉기 유실을 방지할 수 있는 ‘냉장고 문 달기’ 확산을 통해 냉장 온도 유지와 전기 사용량 절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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