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김석규(1941~  )

깜깜하고 무서운 밤이었다.
한 사나이가 피를 흘리며 달아나고
사람들은 낫을 휘두르며 뒤쫓아 갔다.
괭이를 든 사람도 쇠스랑을 든 사람도…
여인의 쓰러지는 울음소리
쑥대머리 사나이는 산으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시평]
‘지리산’ 하면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에 ‘빨지산’, 파르티잔이 떠오른다. 이념 때문에 가족도 삶도 모두 버린 채 지리산 깜깜하고 무서운 밤을 헤맸을 그 사람들. 그래서 삶이 곧 이념이었던 사람들.
‘이념’이란 다름 아닌 삶을 삶으로 이룩하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이념 때문에 삶을 버려야 하는 사람들 또한 이 세상에는 있으니, 이념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람들은 낫을 휘두르며 뒤쫓아 가고, 또 괭이를 든 사람, 쇠스랑을 든 사람. 안타까이 여인의 울음소리 쓰러지듯 절규하고.
쑥대머리 그 사나이가 갔을 그 산, 지리산. 우리의 아픔을 품은 채, 오늘도 장대한 그 모습 그대로 우리의 앞에 서 있는 그 산, 지리산.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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