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양성화 세밀한 계획 제시돼야”

▲ 골드바 (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최근 5만원권이 시중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는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에 따른 부작용으로 좀 더 세밀한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하경제란 한 나라의 다양한 경제활동 중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을 말한다. 세계 각국의 지하경제를 연구하는 오스트리아 린츠대학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5%, 약 300조 원으로 추산된다. 슈나이더 교수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평균 지하경제 비중은 18% 정도로 한국은 경제규모에 비해 지하경제 비중이 비교적 높은 나라에 속한다.

이러한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5년간 27조 원의 세수입을 확보한다는 게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공약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요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오히려 부작용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5만원권의 발행잔액은 37조 188억 원으로 전체 화폐 발행액(58조 737억 원)의 63.7%를 차지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56.6%)보다 7.1%p 증가한 수치다.

반면 5만원권 회수율은 오히려 급감했다. 5만원권의 1분기 회수율은 58.6%로 지난해 1분기(71.6%)에 크게 못 미쳤다. 10장 중 넉 장은 은행으로 되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5월 환수율(59.8%)은 4월(28.8%)보다 다소 증가한 모습이다.

골드바(금괴) 판매도 급격히 늘고 있다. 이는 국제 금값이 약세를 지속하는 것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23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현재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금 선물 8월 인도분은 5.80달러 상승한 온스당 1292.10달러에 거래됐다. 금 선물가격이 1300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0년 9월 이후 2년 9개월 만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골드바 월평균 판매량은 지난해 200㎏ 수준에서 올해는 500㎏ 정도로 두 배 넘게 급증했다. KB국민은행의 골드투자통장 잔액도 5월 말 855㎏(438억 원)으로 올해 1분기 말보다 70㎏ 이상 늘었다.

특히 올해 들어 개인금고 판매량도 급증하고 있다. 실제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개인금고 매장의 경우 올 들어 지금까지 판매량이 이미 지난해 총 판매량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 일각에선 현 정부 들어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본격 추진되면서 상대적으로 금고에 보관하기 쉬운 5만원권과 골드바를 찾는 고소득층의 수요가 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으로 세무조사, 해외계좌 추적 등이 강화되자 재산을 현금화해 개인금고에 보관해두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와 통화당국은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최근 5만원권 품귀현상과 관련해 “여러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언론보도대로 지하경제와 관련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13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5만원권 회수율이 높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나오는데 그런 추론이 맞다 또는 틀리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에 대한 좀 더 세밀한 계획이 나와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탈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지하경제 양성화에 따라 나타나는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이를 통해 세원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정책에 대한 좀 더 명확하고 세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지금은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말만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과거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신용카드 사용을 늘리기 위해 소득공제가 효과를 봤다면, 지금은 이에 더불어 고소득 탈세자에 대한 단속 및 징벌수위가 좀 더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고소득층을 주 타겟으로 가시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세 형평성, 탈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기관의 장기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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