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매달 전국을 돌며 우리 강산을 찾고, 역사와 문화를 돌아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다. 조화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던 정극인의 찬사처럼 우리네 강산의 생김생김과 거기에 담긴 유래와 설화는 참으로 신기하고 때때로 기가 막히다.
조물주의 뜻이 고스란히 자연에 깃들어 세월이 흘러 역사로, 문화로 자리 잡았으니 우리네 역사와 문화를 아는 것은 곧 조물주의 뜻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본래의 것에서 멀어져 왜곡되고 변질돼 그 뜻도 생각도 읽을 수 없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세상이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설사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또한 적다는 것이다. 진실이 가려지게 되니 거짓이 판을 치고, 그 거짓으로 만들어진 역사가 세월이 흘러 마치 사실인 것처럼 자리 잡았으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잘못되었다고 외친들 오랜 세월 거짓에 물들고 세뇌당한 이들에게는 외려 진실이 거짓이 되고 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진실이 영원히 묻히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역사의 흔적을 짚어보고, 그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면 역사는 반드시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다.
진실을 찾으려는 이 앞에 역사는 자연의 섭리를 들어 그 진실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높고 험준한 산, 신성함이 깃든 산 등 오묘한 전설과 이야기가 얽힌 산은 사람에게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산이 허락해야지만 산에 오를 수 있다는 말처럼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산을 찾는 이에게, 변질된 문화를 바로잡으려 산을 오르는 이에게 산은 자신이 감추어두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랜 세월만큼 겹겹이 쌓여 무엇이 역사의 진실인지 분변하기 어렵지만 산은 그 자체로 산을 찾는 이의 생각을 읽고, 느낄 수 있기에 준비된 이에게 묻혀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을 찾는 이의 발걸음을 통해, 그가 보는 자연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알려주길 원한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주기를 원한다.
비슬산과 청도가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그러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지만 그곳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청도와 비슬산이 이서국의 존재를 말해주기 위해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게 되었을 때 자연이 주는 웅대함과 그 안에 역사의 비밀을 숨겨놓은 조물주의 놀라운 솜씨에 또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의 가르침을 따라 맑고 깨끗한 삶을 영위해오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이서국의 역사와 문화는 신라에 복속되면서 왜곡되고 변질되어 버렸다.
불교의 옷이 입혀지면서 이서국의 역사와 문화는 뒤죽박죽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비단 이서국에서 신라로 넘어가는 시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는 말처럼, 패망과 복속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네 역사와 문화는 온전한 진실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신기한 것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우리 민족의 창조적 정신과 높은 수준의 문화는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으니 이는 또한 우리 민족이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 또한 조물주의 조화신공이요, 유달리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조물주의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시대가 바로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을 때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먼저는 우리 안에서부터 잘못된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고, 나아가 외세로부터 왜곡되어지고 변질되어진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애써야 한다.
지금까지는 서양의 물질문명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어 왔고, 부와 권력 등 육적인 부강함으로 인해 역사가 기록되고 왜곡되어 왔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민족의 창조적 정신과 수준 높은 문화로 모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막연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우리가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연다면 역사는 자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구하는 자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는 말처럼 진실을 알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면 분명 언젠가는 진실과 진리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