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범 고등과학원(KIAS) 물리학부 교수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천문학자 박창범

[글마루=김명화 기자] 우주와 은하를 연구하는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 그는 고등과학원(KIAS) 물리학부 교수다. 박 교수는 그의 전공인 우주론 외에 고천문학 연구로도 정평이 나있다. 우리 역사 속의 천문 기록에 관한 치밀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박 교수는 외세가 왜곡했던 한민족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하늘을 통해 우리 역사를 읽을 수 있다”며 “이러한 사실을 천문학을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하는 박 교수. 그를 만나 천문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고대 하늘과 우리 역사를 조명해 본다.

고천문학 연구를 시작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역사 문제에 접근하는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 주려고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 역사에 대한 개인적 호기심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정말 단군왕검이 조선을 서기 전 2333년에 세웠을까? 우리는 정말 반만년 역사를 지닌 민족인가? 신라, 고구려, 백제는 정말 <삼국사기>에 나오는 연도에 세워졌을까? 우리는 정말 북방에서 유래한 민족일까? 한민족을 찬란한 문화민족이라고 자부하는데 실제로 어떤 문화를 내세우고 있는가? 등에 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천문학은 하늘의 역사뿐만 아니라 땅의 역사를 밝히는 데도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합니다.

고대 천문 기록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천체의 운동, 기상학적·지질학적 현상 등은 매우 규칙적이기 때문에 오늘날도 그 규칙성에 따라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수천 년이라는 짧은 인류 역사를 놓고 볼 때 자연의 규칙성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지요.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천문 현상을 활용하면 그 현상이 일어난 과거의 시점을 절대적 산출법으로 정확히 추적해낼 수 있습니다. 또 천문 기록에는 단순한 자연 현상뿐 아니라 옛 사람의 자연관, 사상, 종교, 정치관까지 녹아 있기 때문에 천문학적 기록과 유
물을 통해 고대 문화의 탄생과 그 수준, 그리고 전파 경로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이 땅에 수십 세기 전에 서 있었을 고대인 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고대 천문 기록을 연구할 수 있는 역사서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삼국시대의 천문기록이 약 240개가 있습니다. 또한 <고려사>에는 약 5천 개, <조선왕조실록> 에는 약 1만 5천 개의 천문기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식, 월식, 행성들의 이동, 유성의 낙하, 혜성의 출현 등등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빙성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역사서에 기록된 천문 기록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아득한 옛날에 살았던 무지한 사람들이 천체 운동과 변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대 천문에 관한 실험을 하고 난 후 제 생각이 그릇된 선입관이었다는 점을 알게 됐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일식이 67개, 행성의 움직임이 40개, 혜성의 출현이 65개, 유성과 운석의 떨어짐이 42개, 오로라의 출현 12개 등 240개가 넘는 많은 천문 현상 기록들이 있습니다.

저는 두 역사서에서 1000~2000년 전에 일어났다고 기록한 천문 현상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천체 역학적 계산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 시기의 천체 관측들은 대부분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해와 달과 행성의 별자리들에 관련된 다양한 기록을 실제로 일어난 현상과 전체적으로 맞추어 봤는데 이 기록도 천체 현상들이 일어난 연대와 날짜, 그리고 상황까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하고 나서 저는 과학자로서 선입관을 가졌던 점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선인들의 문화를 편견 없는 시각으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천문학계에서 “<삼국사기>의 천문 기록은 중국 기록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학계에서는 1920년대부터 <삼국사기>의 일식을 비롯한 여러 천문 현상 기록들을 꾸준히 연구해서 많은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삼국사기>의 천문 현상 기록은 중국의 기록을 베낀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삼국 시대 초기 부분이 조작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한 과학적 결과가 아니라 부분적 분석으로 도출된 주관적 판단입니다. 저는 <삼국사기>의 천문 현상 기록이 독자적 관측에 의한 결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반복이 가능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첫 번째로 <삼국사기>에만 있고 다른 나라의 사서에는 없는 천문 현상 기록을 가려낸 다음, 독자적인 그 기록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검증해 봤습니다.

두 번째로 삼국의 최적 일식 관측지를 찾아 중국 나라들이 기록한 일식 관측지와 비교해 보았는데 분석 결과 매우 다른 위도상으로 각각 떨어져 있었습니다. 결국,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이 독자적인 실제 관측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라고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는 한반도 지역이 아닌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이 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진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검증한 결과만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을 조사하던 중 <삼국사기>의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대륙 동부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상대 신라와 백제의 최적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중국 대륙 동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과학적 관측을 통해 알게 됐지요.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천문 기록이 아닌 기상자료를 추가로 연구했어요. 중국과 한반도의 자연 현상 중 가장 두드러지게 지역적·계절적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장마 현상이기 때문에 삼국의 기상 관측지를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기상 자료 연구에서도 상대 신라와 백제의 최적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중국 대륙 동부에 위치해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한국사의 내용과 다르지요. 하지만 과학자인 제가 이 결과를 기초로 해서 새로운 역사나 사서 내용의 유래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죠. 저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가 실험을 한다고 해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객관적 사실까지만을 찾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학자의 능력이자 역사학에 대한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천문학과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민족은 고대부터 천문학을 사랑해 왔습니다. 옛 왕조들은 하늘의 과학, 천문학을 국가의 최고 학문 중의 하나로 중시했지요. 한국의 전통 천문학은 2천년 이상에 걸쳐 남겨진 풍부한 천문 관측 기록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고인돌 시대와 삼국시대의 별자리 지식, 전천 천문도, 현재 세계 최고의 천문 관측대, 조선 초 세종시대의 절정기 등은 한국 전통 천문학의 수준을 예상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아직 개봉되지 않은 많은 유물과 기록이 우리의 진지한 연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영국의 걸출한 과학사학자 조셉 니덤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 이라는 저서에서 한국의 천문학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모든 민족 중에서 한국인이 모든 종류의 과학적 문제에 대해 여러 세기 동안 가장 큰 관심을 지녀 왔다는 신념이 점점 커지게 됐다”며 “우리들은 한국에서 만든 놀라운 천문시계에 주목했다. 또 7세기에 세워진 한국 천문대와 근대 한국의 관측기록 중 혜성 그림 등을 소개했다”고 말하며 한국 전통 과학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했습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검증한 결과만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을 조사하던 중 <삼국사기>의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대륙 동부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상대 신라와 백제의 최적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중 국 대륙 동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과학적 관측을 통해 알게 됐지요.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천문 기록이 아닌 기상 자료를 추가로 연구했어요. 중국과 한반도의 자연 현상 중 가장 두드러지게 지역적·계절적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장마 현상이기 때문에 삼국의 기상 관측지를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기상 자료 연구에서도 상대 신라와 백제의 최적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중국 대륙 동에 위치해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한국사의 내용과 다르지요. 하지만 과학자인 제가 이 결과를 기초로 해서 새로운 역사나 사서 내용의 유래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죠. 저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가 실험을 한다고 해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객관적 사실까지만을 찾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학자의 능력이자 역사학에 대한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한민족의 천문관은 어떠했다고 보십니까?

동양의 선조는 인간과 우주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고 하나로 받아들이는 큰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땅의 거울처럼 여겼지요. 2000년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천문 현상들을 관측했던 선조들의 기록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천문학사 분야를 연구하실 계획이신가요?

저는 10년 넘게 한국 천문학사를 연구해 오면서 우리 선조가 남겨 놓은 수많은 천문 기록들에 매료됐습니다. 고대 천문 기록들이 체계적이고 정확하다는 사실, 관측된 천문 현상 들이 다양하고 방대하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학자들이 한국 천문학사에 관해 연구한 경우가 적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제 전공인 우주론 못지않게 이 분야를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옛 천문학을 연구하는 일은 우리 문명의 기원과 교류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죠. 앞으로 우리 민족의 천문 자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더불어 천문학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천문 과학의 역사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구하며 그 가치는 특별하다고 한다. 별처럼 빛나는 선조들의 정신을 이해하여 오랫동안 묻혀있던 하늘의 역사를 밝힌 천문학자 박창범. 순수하고 진지한 그의 연구가 기반이 돼 보다 많은 역사학자, 천문학자들이 외세가 왜곡했던 우리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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