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구대암각화는 크게 4개의 유형으로 구분되며 이들 유형 간의 중첩관계를 볼 때 오랜 기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주로 얕은 점 쪼기로 고래사냥 장면이 표현돼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면 쪼기로 표현된 고래와 사슴 그림이 많으며, 세 번째 단계는 선 쪼기와 갈기 수법으로 호랑이와 표범과 같은 맹수류가, 네 번째 단계는 큰 고래와 멧돼지가 표현돼 있다. 이와 같은 유형에 따라 그림의 내용이 변화되는 것은 서로 다른 시기의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음을 의미함. ⓒ천지일보(뉴스천지)

[글마루=신정미 기자] 흰 고래 모비딕이 실제 있었던 고래라는 사실을 아는가? 19세기 초, 대서양 전역을 공포에 빠뜨렸던 모샤딕이라는 실존모델 향유고래. 허먼 멜빌이 깊은 경외심까지 느꼈던 그 고래가 선사시대에 우리나라 해상을 누볐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 고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 우리 민족의 진정한 뿌리를 찾아 그림으로 쓴 생생한 역사책의 현장 속으로 가보자.

암각화는 신과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

암각화(巖刻畵)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자신의 바람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바위그림이다.

많은 학자들은 암각화를 ‘종교적 제의에서 사용되는 상징언어이고, 그림의 이미지를 통해 신과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보기도 한다. 암각화는 당시 사람들이 제의 의식을 행하던 장소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은 “암각화는 당시 사람들이 자신들의 숭배 대상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하는 신성한 공간에 그려지게 된다”며 “당시 사람들이 구석기 시대나 빙하시대에 서유럽에서는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신석기시대에는 노천의 강가나 깊은 계곡, 농경과 금속 시대에는 프랑스 몽베고처럼 해발 수천 미터 높은 산 정상에 그려지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반구대 암각화나 천전리 각석처럼 깊은 계곡이나 강가, 멀리 조망할 수 있는 산 중턱, 고인돌 상석 등에 그려진 경우도 있다” 고 설명했다.

대곡천 암각화군, 인류 최초 포경유적지이며 종교의식의 기원지

울산은 근대 동북아시아 포경의 중심지였고 이와 관련된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울산 지역민들에게 고래는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생업의 대상이자 신앙의 대상으로서 오늘날까지 고래를 숭배하는 사당(祠堂)과 제사를 모시는 전통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울산 반구대(盤龜臺 산세가 거북 모양임) 암각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고래사냥과 종교의식의 기원지로 인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문화재청은 2010년 1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각석 및 주변 문화역사 경관을 포함해 ‘대곡천 암각화군’의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사유적으로 태화강 지류인 소위 ‘건너각단’이라 부르는 대곡천 절벽에 296점이 그려져 있다. 이 바위그림은 바다 ‘육지동물상과 수렵’ 어로 장면으로 일대 장관을 이룬다.

선사시대 선조들이 바위면을 쪼아 각종 동물과 도구, 사람 얼굴 등을 파놓은 것인데. 이는 원활한 사냥활동이 이뤄지길 기원하고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특히 다양한 고래그림과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은 인류 최초의 포경 유적으로 북태평양 연안의 독특한 해양 어로문화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있다.

제작 시기는 신석기 말에서 청동기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제작시기에 대해 이상목 암각화박물관장은 “많은 논란이 있어왔지만 대략 7000~3500년 전 신석기 시대 유적”이며 “교과서에서는 최근 연구 결과를 반영치 못하고 여전히 청동기시대로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수정해야 할 부분” 이라고 밝혔다.

천전리 각석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유적으로 대곡천 중류의 기슭 암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다. 대곡천변에 있는 판판한 바위는 폭 약 9.5m, 높이 약 2.7m 장방형으로 위쪽이 앞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이는 신석기말 또는 청동기 초기 동물과 인물상 암각화, 청동기 중기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추상 암각화, 철기시대의 선각인물과 동물상 암각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에 이르는 글씨 등이 여러 층으로 겹쳐서 새겨있는 독특한 유적이다.

기하학적 문양들은 농경사회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신라시대 세선화와 명문기록은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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