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高)유가 수혜가 예상되는 일부 업종을 빼고는 '마른수건 쥐어짜기'에 비유되는 원가절감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특히 초강세 흐름이 꺾이지 않는다면 경영계획마저 수정해야할 처지에 몰리는 위기감이 닥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않다.
◇유가, 어디까지 갈까 = 26일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24일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35달러 오른 121.57달러를 찍어 3거래일째 상승했다. 두바이유는 우리나라가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유종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으로는 올해들어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국제유가는 연평균 112달러이다. 최근에는 최고 120달러 수준으로까지 치솟는 흐름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책연구본부장 겸 석유가스실장은 이처럼 유가가 뛰고 있는 주요 원인으로 이란 제재 긴장감, 유로존 경제위기 여파의 일시적 호전을 꼽았다.
이 본부장은 당초 지난 2월 초 유가 전망 보고서에서 시나리오별로 유가를 전망했다고 확인하고 당장 이런 전망치를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3월 이후 수정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에경연은 2월 보고서에서 이란 제재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국제유가가 단기적으로 180달러, 연평균으로는 135달러까지 오르는 초고유가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제시한 시나리오 네 가지 가운데 최악의 경우 그렇다는 전망이었다.
시나리오Ⅰ은 유럽과 일본, 한국이 이란으로부터의 수입량을 50%(하루 67만배럴) 줄이고 다른 산유국이 20만 배럴을 증산한다는 전제다. 이 경우 올해 배럴당 평균 가격은 작년보다 6% 오른 112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인도를 뺀 모든 국가가 이란산 도입량을 50%(하루 83만배럴) 감축하고 다른 산유국의 증산이 없는 고유가 시나리오Ⅱ에서는 작년 대비 12% 상승한 119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유가가 단기적으로 150~180달러로 치솟고 연평균 135달러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에경연은 내다봤다.
기준유가 시나리오에서는 비(非)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의 공급 확대와 리비아의 생산 회복에 따라 작년보다 4% 하락한 연평균 102달러를 점쳤다.
세계경제에 더블딥(이중침체)이 닥치는 저유가 시나리오에선 17% 떨어진 88달러가 예상 유가다.
이 본부장은 보고서 시나리오에서 밝혔듯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거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유가가 크게 오르겠지만 일단 그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유로존 경제위기 이슈는 그리스 2차 구제금융 합의, 일부 소속 국가들의 경제지표 호전에 따라 일시적으로 유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볼 때에는 유가 하락을 이끌 요인으로 보는 쪽이 맞다고 그는 덧붙였다.
◇산업계 '마른 수건 쥐어짜기' = 유가가 치솟았다고 기업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공장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업계는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대응하고 있다.
연료비가 전체 경영비용에서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업계가 대표적이다.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은 연초 항공기 연료로 사용되는 싱가포르 항공유 가격을 배럴당 각각 121달러, 125달러로 전망했다.
그러나 23일 기준 싱가포르 항공유 가격은 배럴당 136달러로 양대 항공사의 전망치를 훌쩍 넘어선 상황이다. 항공업계는 싱가포르 항공유가 1달러 오를 때마다 약 130억원의 비용 증가를 예상한다.
항공업계가 연료관리 전담조직을 중심으로 유가를 점검하고 연료 절감을 전사적 목표로 삼아 다양한 대책을 실행하는 배경이다.
최단 항로를 찾아내 비행시간을 단축하고 경제속도와 경제고도를 지키는 '연비 운항'을 독려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에 속한다.
회항에 대비한 가연료 탑재 최소화, 착륙 후 엔진 1~2개 정지 후 지상 활주도 대표 절약책이다.
항공기와 엔진을 주기적으로 물로 씻어내 엔진 출력을 높이고 항공기 성능을 높이기 위해 양 날개 끝에 '윙렛'을 장착하기도 한다.
음용수를 적정량 탑재하고 승무원의 개인수하물을 줄이는 것도 고육지책의 산물이다.
올해 평균 벙커C유 가격을 600달러대 중반으로 예측한 해운업계도 최근 벙커C유가 700달러를 웃돌자 비상이 걸렸다.
해운업계는 보통 운항비용에서 기름이 차지하는 비중을 16~17%로 잡지만 고유가와 맞물려 이 수치가 20%를 넘어서자 연료 절감에 '올인'하고 있다.
선박 운항속도가 2배가 되면 기름이 8배 더 들어가므로 적정 운항속도 유지를 절대 명제로 지키고 연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항구에 기항해 연료를 가득 채운다.
노선별 최단거리를 운항하고 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선체 디자인을 조정하며 실리콘계 페인트를 선체 외부에 칠하는 등 작은 부분까지 신경쓴다.
자동차 업계는 제조비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과 차량 유지비 상승이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유가 동향에 민감하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은 다단 변속기, 자동차 경량화 기술, 친환경 차량 개발을 통해 고연비 실현에 집중하고 있다.
또 본사와 공장별 통근버스 운행, 주차증 발급 제한, 5부제 시행으로 자가용 기름값 아끼기에 한창이다.
포스코도 부서별로 에너지절감계획을 수립하고 실행 상황을 격주 단위로 챙기고 있다.
또 연료가스 예열 장치 기술을 개발, 기존 발전소의 보일러 열효율을 3~5% 높였다. 발전소, 가열로, 열처리로 등의 폐열을 회수해 전력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정유·조선은 '예외'? = 정유업계는 유가 상승에 맞물려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면 정제이윤이 커진다.
지난해 '대박'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고유가 때문이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의 작년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50.6% 증가한 2조8천488억원을, GS칼텍스는 68.3% 늘어난 2조20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정유사들은 최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국제유가 강세로 국내 기름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여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조선업계는 고유가로 원유·가스 등 해양자원 개발이 늘면 LNG선과 시추·생산을 위한 해양플랜트 수주가 증가하기 때문에 고유가가 오히려 반가울 수 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STX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업체들은 연초 LNG선과 해양플랜트 수주를 소식을 잇따라 알렸다.
건설업계도 한국 건설사들의 '텃밭'인 중동 산유국의 재정이 좋아지면 대규모 공사 발주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수주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