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나성 북문지 전경(7월에 공개된 북문지)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12.6
부여 나성 북문지 전경(7월에 공개된 북문지)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12.6

 

부여나성, 사비도성이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핵심시설
원지형 위에 새롭게 흙을 깔아 평탄화하는 기초공사 흔적 확인
발굴현장, 조사기간 중 상시 개방… 국민과 적극적인 소통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부여군(군수 박정현)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여 나성(북나성) 발굴조사’에서 북쪽 출입시설(북문지, 北門址)의 존재와 함께 나성의 축조 기술을 밝힐 수 있는 단서가 확인됐다. 

부여나성은 백제 사비도성을 감싸는 외곽 시설물로서 도성을 보호하고 도성의 내‧외부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사비 천도(538년) 전후한 시점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돼 사비도성이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핵심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조사는 부여 나성 중 도성의 북동쪽 방비를 담당하는 북나성에 대한 10차 발굴조사로 북나성에서 부소산성으로 이어지는 성벽의 진행 방향과 축조 양상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조사해 7월에는 북나성에서 처음으로 문지(門址, 문이 있던 자리)가 확인되면서 주목받은 바 있다.

 

흙 쌓는 공정 단위가 확인된 성벽의 평면 모습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12.6
흙 쌓는 공정 단위가 확인된 성벽의 평면 모습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12.6

이번에 확인된 북나성 성벽 축조기술을 살펴보면 먼저 성을 쌓기 위해 자연 퇴적된 원지형을 기반으로 새롭게 흙을 깔아 평탄화하는 기초공사가 진행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초공사는 성벽 주변의 넓은 범위에 걸쳐 진행됐으며 하천변의 저습하고 연약한 지반을 단단하게 하려고 판판한 돌을 넓게 깔거나 혹은 산사토 덩어리들을 섞어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벽은 잘 다져진 대지 위에 돌을 가공해 외벽면을 쌓고 안쪽은 흙을 산처럼 쌓으면서 조성되는데, 이중 돌로 쌓은 석축부는 저습한 연약 지반에서 성벽의 무게를 견디도록 하려고 석축 단면이 사다리꼴이 되게 쌓아 안정감을 줬다. 

또한 석축부에 덧붙여서 안쪽에 흙으로 쌓은 토축부는 5~10㎝ 두께로 흙을 다져가면서 쌓은 양상인데, 성벽의 진행방향에 따라 3.2~5.1m 규모로 흙을 쌓은 공정의 단위가 확인돼 주목된다. 

특히 토축부 공정이 구분되는 지점에 따라 석축부의 축조 형태가 달라지는 양상이 확인돼 성벽의 유기적인 축조 공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성벽 단면 모습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12.6
성벽 단면 모습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12.6

조사를 통해 확인한 성벽의 남은 높이는 최대 2m, 성벽 폭은 최대 14.2m으로 성벽 폭의 경우엔 조사지역 밖으로 연장되고 있어 더 넓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성벽의 내측 토축부에서 개배(蓋杯), 직구소호(直口小壺) 등의 유물이 출토돼 성벽의 조성이 6세기 중엽 경에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조사가 진행된 북나성 일대는 가증천이 백마강과 합류되는 지점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포구인 북포(北浦)로 비정되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북문(北門)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육상과 수로를 연결하는 백제 사비기 교통체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 성과가 매우 크다.

발굴현장은 조사기간 중 상시 개방해 국민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백제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은 “앞으로도 부여군과 함께 백제왕도 핵심유적인 부여 나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지원해 백제 사비기의 도성제를 규명할 것”이라며 “백제 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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