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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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말이 오히려 그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 여성에게 외모 중심으로 언급을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조직 내에서 말을 통한 성희롱의 상당수가 재밌게 분위기를 띄우려는 의도에서 일어난다. 사장님 개그라는 유형이 이에 속한다. 상급자가 재밌게 하려고 농담을 할 때 듣는 부하들은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그 개그의 수준이 아재 개그보다 더 심한 수준이라면 위험하기 일쑤였다.

최근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에서 논란들이 일어난 일은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한 방송사에서는 루마니아 선수단이 등장할 때 드라큘라 사진이 나온다든지 자살골을 넣은 선수에게 고맙다는 자막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 때는 1986년 원전 폭발 사고의 현장인 체르노빌 사진을 띄웠다. 김연경 선수 인터뷰 영상 뉴스에서는 “축구, 야구 졌고 배구만 이겼는데?”라는 자막을 통해서 마치 다른 종목은 낮춰보는 듯하게 했다. 마지막 날 마라톤 중계방송에서 오주한 선수에게 ‘찬물을 끼얹는다’는 말도 나왔다.

연이어 사고가 터지자 해당 방송사는 사장이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진상 조사 뒤에 관련 책임자와 제작진에 대해 인사조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공공성 강화 위원회 설치에 따라 내부 관행과 조직문화, 책임과 윤리 관련 제도 등을 전면 재검토하는가 하면 사전에 막을 게이트 키핑 시스템도 강화해 사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걸러내겠다고 했다. 또한 인권심의 위원회를 신설해 다양한 인권적 요소를 반영하고 스포츠 중계 생방송도 담당 심의위원을 지정해 집중적으로 심의하는가하면 임직원 대상 인권 의식 체화를 위한 집중 사전 교육도 모색한다.

이런 제도와 조직의 신설은 사전에 필터링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조치들이 분명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스포츠 저널리즘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 방송사에서만 유독 집중해 드러났을 뿐 다른 방송사도 언제나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송사에서도 탁구 중계에서 58세의 상대 선수에 대해 “탁구장 가면 앉아있는 고수 같다” “여우 같다”라고 하거나 기계 체조 결선에서 여서정의 착지에 대해 아나운서가 여홍철 해설위원에게 “저런 모습은 아빠를 안 닮아도 되는데”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스포츠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바뀌어야 한다. 이런 예능적 세계관 때문에 흔히 스포츠 경기를 엔터테인먼트와 묶어서 중계하거나 보도하는 경향이 많다. 이런 관념에서 해설 한마디나 자막을 하나를 써도 재밌게 해야 한다는 예능적 태도가 인권차별적이거나 상대방을 희롱하거나 낮춰보는 듯한 행위가 돼 버린다. 사장님 개그가 돼 버린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 아니듯이 스포츠 중계에 예능을 섣불리 결합하는 것은 반인권적 반사회적일 수 있으며 심지어 반(反)올림픽 정신이 된다. 스포츠 선수를 연예계 스타처럼 대하는 것도 엔터테인먼트 관점 때문이다. 과거 언론 매체 가운데 스포츠 신문이 연예 뉴스와 묶어서 번창을 하던 시기도 있었던 이유다.

이런 보도 태도 때문에 특히 실력이 아니라 여성 선수들의 외모가 품평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먼 과거의 행태며, 국민들은 높은 수준을 원한다. 스포츠가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은 시청률 지상주의와 페이지뷰수 경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인터넷 모바일 콘텐츠와 경쟁해야 한다는 인식은 자칫 지상파 방송의 정체성도 위협한다는 것을 이번 도쿄 올림픽이 보여준 셈이다. 스포츠는 꼭 재미가 있지는 않아야 한다. 스포츠는 감동과 재미 이전에 사실과 기록의 영역이다. 다른 요인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스포츠 정신을 해친다.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많은 제도 신설과 조치를 통해 사전예방을 하려 해도 스포츠 경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지 않고는 스포츠 저널리즘이 얼마나 변화할지 가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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