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not caption

방탄소년단이 자기와 벌이는 싸움이 본격화됐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현상이 빌보드 차트 1위에서 자신의 곡을 이긴 일이다. 신곡 ‘퍼미션 투 댄스’는 7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버터’를 밀어내고 새롭게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1위, 2위를 자신의 곡으로 채우는 일은 확실하게 팬층의 존재를 의미한다. 어쩌다가 1위를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점이다. 이렇게 1~2위를 자신의 노래로 빌보드 차트를 채운 것은 2018년 드레이크 이후에 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고, 더구나 5곡의 곡을 10월 2주 만에 1위에 올린 기록도 대단해서 마이클 잭슨 이후 3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도 방탄소년단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낼 줄 미처 몰랐다. 아이돌 음악에 대한 편견과 질시가 만연했던 대한민국의 음악 풍토였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방탄의 성취는 음악 유통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 때문에 가능했다. 음악은 기존의 음원 사이트도 아니고 SNS를 통해서 소비된다. 특히 이를 파고든 것이 뮤직비디오 전략이었다.

고퀄리티의 뮤직비디오를 완성도 있게 만들어 누구나 즐기게 하고 매혹시켰다. 매혹된 리스너들은 다른 곡들도 찾아보게 되며 마침내 돈을 지불하고 음악을 소비한다. 물론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노래는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하게 돼 SNS를 통해서 노래는 물론이고 자신이 다시 찾은 콘텐츠를 공유한다. 이는 단지 수동적인 음악 이용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음악을 발견하고 가치 부여하는 콘텐츠 마이너 즉 디지털 콘텐츠 채굴자의 탄생이다. 이는 상당한 브랜드 효과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특히 팬덤 효과가 강력하게 응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스토리텔링이 주효하게 작용한다.

방탄은 특히 온갖 어려움을 당한 흙수저 아티스트의 역경 스토리로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전 세계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더구나 또래를 대변하는 음악과 가사 그리고 소통 담론은 진실성에 바탕을 둔 절대적 가치를 형성해 갔다. 음악은 단지 노래나 가사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세계관이나 정신적 가치로 사랑하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시켰다.

당연히 그 세계관이 정신적 가치를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은 가치 절하를 할 수밖에 없다. 가치 절하를 당할수록 강력한 팬덤은 더욱 공고하게 이뤄진다. 이렇게 강력한 팬덤은 모바일 문화가 진전될수록 더욱 음악적 플랫폼 역할을 한다. 겉으로는 SNS로 보이지만 경영학적으로는 팬 커뮤니티 비즈니스 모델을 형성하게 된다. 이미 방탄소년단만이 아니라 케이팝은 세계 팝 음악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비단 한국의 뮤지션이 아니라 세계적인 아티스트며,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세계에 걸쳐 참신한 음악적 감각을 갖고 있는 창작자들이 대거 콜라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플랫폼보다는 케이팝이 세계 대중음악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보겠다. 이른바 디지털 허브 효과다. 플랫폼은 정거장이라는 뜻에서 파생했기 때문에 들고 나간다는 점에 더 착안을 한다. 허브는 네트워크의 중심성이 매우 강한 면을 내포한다. 단순히 콘텐츠가 들고 나는 플랫폼은 초기 인터넷 포털의 운명처럼 된다. 네이버가 라이브를 강화하거나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단순 플랫폼이 아닌 허브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렇기에 케이팝에게는 문화적 허브 역할에 필요한 기획, 창작, 마케팅 전략과 함께 책임 의식과 실천도 중요해졌다. 세계의 수많은 드리머들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장이자 마당을 어떻게 마련하는 것, 이것이 케이팝이 음악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의 행복을 좀 더 끌어올리는 디딤돌이 된다. 그것은 자신과 벌이는 싸움이다. 방탄소년단이 자기의 곡들, 나아가 지금까지 해온 활동들과 경쟁을 벌이는 과정은 우리 자신들과 벌이는 싸움이기도 하다. 케이팝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닥친 숙명을 핍박받던 아이돌 음악이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