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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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그 사이 유튜브를 열심히 한 모양이다. 유튜브 주소를 자연스럽게 카톡에 링크시켰다. 본인이 기획 구성 출연하고 편집하는가 하면 자막작업까지, 고군분투한 흔적이 여실했다. 하지만 구독자수가 늘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물론 유튜브 크리에이터 활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고민을 한다. 그런데 어떤 진행자를 콕 집어 비교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신문쪼가리를 읽어주는데 구독자가 20만명, 자신은 수백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름 공들여 만드는데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곧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20만명이나 되는 그 유튜버는 임영웅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말한다고 한다. 자신은 영화 이야기를 심도 있게 하는데, 그런 내용으로 20만명의 구독자수를 거느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답은 명확했다. 신문쪼가리를 읽는다고 해도 임영웅 팬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 구독자는 쇄도하기 마련이다.

영화 ‘인질’에서 졸지에 납치 구금된 황정민은 인지도 유명세 때문에 난처한 꼴을 당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신의 팬을 만나게 된다. 즉 유명한 사람을 알아보는 것과 정말 그 사람을 선망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납치 주범들은 황정민이 유명하기 때문에 시기 질투하는 가운데 돈이 많을 테니 그를 이용하고 심지어 죽일 생각까지 한다. 하지만 팬은 돈 때문에 납치 행위에 참여는 했지만 해할 생각은 없다. 결국 그 팬의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1차 탈출을 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박나래를 둘러싼 논란은 유명세와 팬덤의 충돌 현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21세기는 셀럽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팬덤 시대다. 셀럽이 있어야 팬덤도 있고, 팬덤이 있어야 셀럽이 있다. 쉽게 말하면 텔레비전에 많이 나온다고 명사였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그와 별도로 팬이 있어야 한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아티스트 중심의 대중문화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철저하게 팬중심으로 기류가 형성된다. 케이팝 한류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 팬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방편의 중심은 SNS다. 20세기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매스 미디어 시대와 다른 취향 생산과 향유의 문화종족 시대의 모습이다.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과 레이코 스콧은 ‘팬덤 경제학’에서 “팬과 팬덤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한 “팬덤은 다른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고도 했다. 같은 관심사는 콘텐츠보다는 사람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이유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감정이입을 하고 동일시하거나 대리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20세기에 작동하던 단순한 경외감이 아니라 동시대 같이 호흡하는 존재로 대등하게 여기는 문화 심리가 주효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슈퍼 팬덤’에서 조이 프라드블래너와 에런 M. 글레이저는 “소비자들은 브랜드에 돈을 바치지만, 팬들은 에너지와 시간을 바친다”라고 했다. 이는 팬덤의 본질을 말하는 것인데 요즘에는 팬들이 셀럽에게 돈을 바친다. 심지어 마음에 드는 스토리텔링을 지닌 셀럽에게는 돈쭐을 내주는 일이 빈번하다. 빅데이터 열풍이 부는 가운데 아무리 데이터를 분석한다고 해도 이런 팬덤의 열정과 마음을 얼마나 분석해낼 수 있을까.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과 레이코 스콧이 “앞으로는 통계에 의존하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친밀감, 따뜻함, 공감대를 만드는 일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투자가 아니라 팬덤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따뜻하게 만들어줄 무엇인가를 공감시켜야 언제나 평생 반려자처럼 남을 수 있다. 이는 오로지 본인도 모르게 셀럽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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