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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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애프런(Charles Affron)은 ‘영화와 정서(Cinema and sentiment)’에서 영화에서 얼마나 정서가 중요한지 언급한다. 그는 emotion이 아니라 sentiment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영화에서 관객에게 감성과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한다. 대중콘텐츠에서 특히 드라마와 영화에서 남용되는 용어가 있는데 ‘신파(新派)’라는 개념이다.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이 되는데, 본래 일본에서는 가부키의 과장된 표현이나 연출을 의미했다. 이는 반대로 극예술이 절제와 은근함을 강조하는 예술 미학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러한 극예술은 합리적 도식을 강조하기 때문에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상당한 수준(?)에 다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예술영역이라고 자부할지는 모르지만, 이미 구조 얼개에 침잠해 있을 뿐이다. 지식인 예술가들은 이렇게 정서를 배격한 작품들을 선호하면서 이를 예술의 수준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정서에 바탕을 둔 작품들이다.

개봉 영화 ‘모가디슈’가 신파가 없어서 좋다라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전문가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오히려 신파가 있었다면 더욱 더 흥행을 했을 것이다. 신파는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때 적절한 시점에 사용하지 못했을 때 돋보이지 못할 뿐이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억지로 배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오히려 의문이다. 일반 관객들은 감정을 공유하고 느끼기 위해 대중 콘텐츠를 향유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에만 한정되는 요소가 아니게 됐다.

넷플릭스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은 대개 이런 신파적인 요소가 있다. 물론 대개 케이팝이든 드라마든 보편적인 포맷에 새로운 요소를 차별화시켰다는 장점이 언급된다. 우선 케이팝은 세계 젊은이들의 선호도가 높은 힙합에 우리 아이돌 특유의 다이내믹함을 입혔다. ‘스위트홈’은 크리처물이지만 식탐 괴물, 연근 괴물 등 색다른 캐릭터가 등장한다. ‘D.P’는 수사물인데 디피라는 군무이탈자 체포조가 등장해서 이채롭다. ‘킹덤’에서 좀비는 좀비인데 생사초를 통한 좀비의 발생이 신선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에게 더 익숙한 생존 게임 포맷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줄다리기’ ‘오징어 놀이’가 색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러한 점도 형식에 관한 것이다.

‘스위트홈’에서는 정말 가슴 아픈 저마다의 사연이 나온다. ‘D.P’는 탈영병들의 아픔이 더욱 아리다. ‘킹덤’에서는 애절한 민중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오징어 게임’에는 특히 빚에 몰린 서민들이 하나 같이 절박하게 마음을 울린다. 형제애, 우정, 연민, 배려, 연대 같은 끈끈한 정과 인간애가 농축돼 있다. 이를 일부 사람들은 신파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오히려 그러한 요소를 제거한다면 작품성을 낫게 한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지적은 수준 높은 이들의 고퀄의 지적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오히려 대중적 감정선에 따라서 이 드라마를 통해 삶과 세상을 반추하게 된다. 오히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이러한 점 때문에 각광 받고 있다. 오히려 객관과 절제의 구조적 미학을 소비시키는 콘텐츠가 대부분인 현실에서는 오히려 신파 콘텐츠가 차별화되는 셈이다. 방탄소년단이 청년들의 희망과 용기를 정서적 격려를 말했을 때 뻔한 말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세계 청춘들은 열광했다.

감정과 정서를 제거한 장르물은 이미 할리우드가 장악하고 있다. 그런 콘텐츠는 오히려 좁은 소구력을 가질 뿐이다. 블룸버그가 오징어 게임 인기 소식을 전하며 할리우드 콘텐츠를 케이 콘텐츠가 위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센티멘털한 정서적 케이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배경을 생각하면 블룸버그의 진단이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데카르트의 후예들은 형식이나 구조, 기술적 테크닉이 콘텐츠의 흥행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지만 최한기의 기철학을 계승한 이들이 보기에는 활동운화하며 움직이는 가운데 끊임없는 정서적 교감이 결국 세상을 움직여 간다. 그것이 신파가 비난에도 계속 진화하는 이유고, 케이 콘텐츠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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