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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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장마가 늦게 시작돼 피해가 줄겠구나 생각했는데 일부 지방에 집중호우를 퍼부어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많이 발생하게 됐다. 7월 초 내린 국지성호우가 제주지방을 용케 벗어났지만 남해안 지방에 시간당 80㎜ 폭우를 뿌렸다. 그로 인해 전남에서 산사태 등이 발생하는 등 장맛비 피해가 속출했다. 비단 전남뿐만이 아니다. 전북과 경남에서도 많은 피해가 발생됐으니 갑자기 피해를 당한 이재민들과 국민들은 장마기간 내내 추가 피해 발생에 걱정이 크다.

매년 장마, 태풍 등 자연재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재해 양상이 다양하고 피해지역도 다르다보니 특정지역에 한정해서 사전대비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평상시에 재난 특보가 발령될 때 국민들은 재난부서에서 알려주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한계라면 한계이다. 평소 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피해는 줄일 수 있겠지만 재난으로 인한 ‘피해 제로’로 이어질 수 없으니 행정기관이나 국민들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재난의 특성상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관리공무원이 잘 대처한다고 해 피해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재난 피해 사례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장마기간 중 뉴스를 들으면서 이것저것 떠올리다 보니 옛일들이 생각난다. 중앙행정기관에서 재해대책 업무를 담당하던 시기로 그 때는 인력과 장비가 없어 몸으로 때우기가 일쑤였다. 태풍이 찾아든 어느 해 그때는 수습 상황을 장·차관에게 6시간마다 보고하느라 3일 밤을 꼬박 새우며 일한 적이 있는데, 지금 같았으면 어림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옛 상념에 빠져 있다가 지난 6월 초순경 만난 방기성 교수의 말을 한번 짚어본다. 행정자치부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방 교수는 경기도 행정2부지사, 제주부지사, 국민안전처 안전정책실장, 소방방재청 차장을 지냈고, 현재 우리나라 재난관리의 전문가로 소문나 있다.

공직에서 떠난 그가 재해 전문 교수로 재직하면서 바라는 바는 재난안전공무원들의 체계적인 양성으로 재난관리를 효율적으로 대처해 국민이 안전한 대한민국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말은 재난관리가 쉽지는 않다는 의미다. 사실 자연재난과 인위재난이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지만 정부의 대처는 안이한 편이다. 지금도 대권 주자들이 향후 정책을 구상하면서 진작 국민생명과 재산과 직결되는 재난안전관리에 대한 정책이나 언급은 없는 현실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재난관리조직은 내무부 건설국 이수과의 사무관 계장급이 담당했으니 정말 빈약하고 초라한 편이었다. 그 후 대형재난이 터지고 나서 중앙행정기관에 재난관리 조직이 비로소 설치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행정자치부’의 명칭을 ‘행정안전부’로 개칭해 재난·안전기능이 대폭 강화됐고, 2013년 박근혜정권이 출범하면서 안전(安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칭했으며, 세월호 참사 발생 후 ‘국민안전처’라는 장관급 매머드 부처가 탄생하게 된 것인데, 그것도 잠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국민안전처는 행정안전부의 차관급 재난안전관리본부로 격하되고 말았다.

전문성과 역할을 가진 재난관리 공무원들의 존재는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는 재난업무 공무원은 일반직 공무원이 대부분이다. 중앙부서와 지자체, 교육지자체 방재안전직 총정원은 60만명이 조금 넘지만 방재직 공무원은 2%에 불과하고, 전국 시․군․구의 재난관리 부서 7000여명 인력 가운데 방재안전직 직렬의 전문 공무원은 1100여명(16%)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실만 봐도 대한민국의 재난관리 수준이 어디까지 왔고, 재난관리의 현주소가 어떠한지가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하겠다.

지금은 장마기간 중이고, 또 여름철에는 태풍이 불어오는 시기라서 국민피해를 얼마나 입을지 알 수가 없다. 재난은 피해갈 수 없지만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는 있다. 문제는 전문성이 있는 재난공무원의 양성인바, 현재 중앙이나 지자체의 재난부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대부분이 일반직 공무원이다 보니 경험을 축적하게 되면 재난과 관련이 없는 다른 부서로 이동이 된다. 그렇다면 하루빨리 법제화돼있는 대로 방재안전직 공무원을 재난부서에 충원해야 하는데 정부에서는 방재안전직 직렬까지 만들어놓고도 시행이 더디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만큼 그로 인해 자연재해가 많고, 피해 발생이 다반사다. 그렇지만 재난발생 자체를 막을 수 없더라도 ‘피해 감소’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 쉬운 길이 전문직 공무원을 양성․관리하는 방법인데 ‘재난으로부터 국민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꿈꾼다면 정부와 국회에서는 방재안전직 정착을 위해 정책적 배려와 함께 정무적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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