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부처님 오신날을 두 달여 앞둔 2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형형색색의 오색연등이 달려 있다. ⓒ천지일보 2021.3.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부처님 오신날을 두 달여 앞둔 2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형형색색의 오색연등이 달려 있다. ⓒ천지일보 2021.3.23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오늘(19일)은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이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전국 사찰에서는 신도들이 모여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연등행사 및 법요식을 거행한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몇몇 사찰들을 찾았다. 부처님오신날 전날인데도 사찰들에는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외국인들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종교·국적·인종·나이에 관계없이 이들이 사찰을 찾은 이유는 형형색색의 연등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으리라 여겨진다. 기자도 밝게 빛나는 연등에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찰 중 단연 눈에 띄었던 곳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계사(주지 지현스님)다. 조계사는 한국 불교 대표 종단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원행스님) 총본산답게 사찰 지붕과 그 일대를 빈틈없이 연등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신도들이 연등을 구매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1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신도들이 연등을 구매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19

그런데 재작년 한 차례 고가 연등을 판매해 뭇매를 맞았던 조계사가 올해도 역시 고가의 연등을 내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재작년 조계사는 ‘1000만원짜리 연등’이라는 관계자의 안내멘트로 ‘고가 연등 판매’ 비판을 받았고, 이로 인해 소송전까지 치렀다가 패소해 쓴맛을 봐야 했다.

천지일보는 재작년 조계사가 연등 가격 고지 및 판매 등에 있어서 일반인에게 상업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취지의 비판기사(‘부처님오신날 올해 조계사에 달린 연등은 얼마치? ‘18억 조계사 연등, 부처님오신날이 좋은 이윤가’)를 보도했다. 조계사는 즉각 이 기사에 반발해 천지일보를 상대로 1억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취재 당시 사찰 관계자는 가장 비싼 연등이 1000만원의 장엄등이라고 안내했고, 조계사는 소송에서 “장엄등 모연금이 1000만원이라는 표현이 없었다”며 해당 사실을 부인했다. 또 조계사는 가격을 명시하고 연등을 달도록 하는 행위에 대해 연등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모연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조계사 관계자가 기자에게 1000만원이라고 언급한 장엄등. ⓒ천지일보 2021.5.1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조계사 관계자가 기자에게 1000만원이라고 언급한 장엄등. ⓒ천지일보 2021.5.19

취재 당시 1000만원으로 안내받았던 그 장엄등은 정말 1000만원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날의 진실을 다시금 확인하고자 곧바로 ‘공양 접수처’로 향했다.

접수처는 연등을 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참을 기다려 연등 문의 순서가 돌아왔다. 먼저 다른 종교를 갖고 있어도 연등을 달 수 있냐고 물었다.

안내자는 “불교를 종교로 갖고 있지 않아도 달 수 있다. 크리스마스 때 트리 장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밖에 있는 등은 3만원, 법당(대웅전) 안에 있는 등은 20만원인데 어떤 등을 다시겠냐”고 물었다. 이 안내자는 크리스마스 때 트리 장식하는 것과 같다고 했지만, 사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하는 데 일반인이 교회에 돈을 내고 하지는 않는다. 이는 종교 간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연등 금액 또한 적은 돈이 아니었다. 장엄등 금액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장엄등 사진을 안내자에게 보여줬다. 장엄등을 달고 싶다고 문의하자 안내자는 깜짝 놀라 소리를 쳤다. 그는 “이거 1000만원짜리 등이야! 그 옆에 있는 것은 108만원이고, 이 비싼 등은 사업가들이나 달지…”라고 말했다.

소위 연등 공양으로 불리는 장엄등. 지난해 소송에서 조계사는 분명히 1000만원짜리 등은 없다고 했지만, 올해도 안내자는 1000만원이라고 안내했다.

게다가 이 안내자는 문의자의 외관을 보고 “달고 싶으면 내년에 와서 달라”며 “내년까지 저금 많이 했다가 다세요”라고 다소 무시하는 듯 한 뉘앙스의 멘트를 던졌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연등 가격표. ⓒ천지일보 2021.5.1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연등 가격표. ⓒ천지일보 2021.5.19

지난해 논란이 됐던 가격표도 여전히 있었다. 다만 공개적으로 내놓고 있지는 않았다.

안내자에게 가격표를 물었을 때는 없다고 말했지만, 가족과 상의해서 연등을 달고자 한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안내자가 자신이 갖고 있던 팜플렛 안에서 연등 가격표를 꺼내 보여줬다.

이 가격표에 따르면 연등 가격은 소원 종류와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대웅전에 다는 108장엄등은 108만원, 화엄성중등은 30만원, 소원성취등은 20만원, 신중가피등은 20만원, 극락왕생등은 20만원이었고 관음전에 다는 관음보살등은 20만원, 극락전에 다는 지장보살등은 20만원이었다. 이외에도 사천왕등 5만원, 길상인연등 5만원, 천진불등 5만원, 진신사리탑등 5만원, 청정도량등 3만원, 영가천도등 3만원 등이었다.

(출처: 조계종 홈페이지)
조계사 홈페이지에 있는 ‘연등 온라인 모연 안내’ (출처: 조계종 홈페이지)

올해는 5만원짜리 ‘코로나19 극복 서원등’까지 등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계사 홈페이지에 있는 ‘연등 온라인 모연 안내’에 들어가 보니 돈만 보내면 연등을 달아준다는 안내도 있었다.

연등 하나당 적게는 수만원, 많게는 1000만원에 달하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연등을 다음에 달겠다고 하니, 안내자는 “(다른 사람들은) 지금 다 달고 있지 않냐”며 “오늘이나 내일까지 달지 않으면 연등을 다는 의미가 없다”고 구매를 유도했다.

고가 연등을 판매하며 지금 당장 연등을 달라는 모습은 재작년 조계사 연등 안내자들의 행동과 오버랩(overlap)이 됐다.

고가의 연등 판매에 대해 고진광 시민사회단체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대표는 연등 하나에 1000만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재차 물었다.

그러면서 “연등을 돈으로 가격을 규정한다는 것에 대해 불교가 부처님오신날 뜻의 본질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연등 종류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규정해 차별화 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봤다.

비싼 연등을 달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돈이 많은 사람은 그냥 돈을 내면 되지 굳이 연등으로 과시할 필요가 있냐”며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연등을 달 수 있게끔 가격에 차별화를 두지 말고 가격을 똑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지만, 불교가 연등마저 이렇게 차별화를 둬서 되겠냐”며 “올해 조계종 봉축 표어가 ‘희망과 치유의 연등을 밝힙니다’인데, 상징적으로만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족도교 김중호 도장은 부패한 종교계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김 도장은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해버린 게 현 종교세계”라며 “불교도 마찬가지다. 지금 그런 연등 금액 지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두가 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버린 게 현실이라서 지적하는 게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1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19

2년 전 연등 가격을 지적한 기자수첩 내용에 대해 조계사에서 가격을 정한 바 없다고 말한 것과 관련 사실 확인 차 다시금 조계종 총무원 홍보국에 전화를 시도했다. 여러 번 전화했으나 연락은 닿지 않았다.

연등 하나에 얼마가 됐던, 연등을 다느냐 마느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고가의 연등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또 연등 구매를 부추기는 모습에서 ‘무소유’를 가르쳤던 부처의 일성이 떠오른다.

불자들조차도 세속화된 불교는 이제 원시 수행자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불교계가 무아(無我)를 실천하는 모습, 불법(佛法)을 전하려는 정정당당한 수행자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상징적인 사찰 조계사부터 갖춰야 할 모습이 아닐까.

해당 영상은 기자와 ‘공양 접수처’ 안내자가 연등 가격에 대해 나눈 대화를 녹음한 녹취록이다.

(편집: 김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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