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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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세계대전이 시작될 조짐이다.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업체(IDM)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기로 선언하면서 200억 달러를 들여 미국 내 신규 반도체 팹 2개를 짓기로 했다. 인텔은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MS), 퀄컴, 아마존 등 기업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3000개 이상의 일자리, 3000개 이상의 건설 고용, 1만 5000개 이상의 장기적인 지역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IBM 등 다른 미국 기업들과 협업 하겠다”고도 했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진출 결정은 미국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정에서 선봉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자국 내 반도체 생산에 350억달러를 지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도체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공급망 재검토’ 행정 명령을 승인하면서 미국 반도체 육성과 자립화를 역설했다.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고 한국 대만 등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진출 결정은 이러한 바이든 정부 기조에 즉각 대응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인텔은 세계 최대 중앙처리장치(CPU) 제조업체다. 다른 설계 회사의 칩을 대신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소규모로 해 왔었다.

그러나 독립적인 파운드리를 새로운 사업 모델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텔은 삼성전자, TSMC, UMC 등 첨단 파운드리 시장의 80% 이상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는 점과 반도체 수요가 미국과 유럽에서 집중적으로 늘고 있어 정부의지에 발맞추어 반도체의 미국 내 자립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럽연합(EU)도 디지털 전환을 천명하며 2030년까지 EU 내 글로벌 반도체 생산량 점유율을 2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의 2배 이상이다. 일본 정부도 해외에 의존해온 첨단 반도체의 국내 생산 체제 구축에 나선다. 일본 정부는 기업들과 손잡고 미국, 대만과 긴밀한 협력을 추진해 2025년까지 첨단 반도체 개발과 양산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중국은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는 와중에도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자동차 반도체 수요 등으로 파운드리 제품은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데 힘입어 늘어난 영업이익으로 올해 차세대 칩 개발과 양산에 30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비메모리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인텔의 결정으로 아시아 파운드리 업체와 미국 파운드리 업체 간 치열한 주도권 다툼과 미-중 무역 분쟁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차세대 첨단 기술 주도권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막대한 투자를 동반하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데 최고경영자가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성공할지 의문이다.

인텔과 TSMC 그리고 미국, EU, 일본 등 주요국 정부의 이러한 일련의 조치로 세계 반도체 업계에는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한국이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지키려면 기업뿐 아니라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미국과 대만처럼 반도체 공장 건설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차세대 칩 개발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더더욱 정치적으로 기업 활동을 옥죄거나 규제를 남발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과 대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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