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동아예술전문학교 예술학부 교수)

성전환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아이가 생길 수 있다고 정말 믿었을까? 그 아이를 파라다이스그룹의 상속자로 만들겠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사기 수법을 믿었다는 전 펜싱 국가대표의 주장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

이번 희대의 사기극을 돌아보며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리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속에서 톰 리플리의 작은 거짓말은 점점 확대돼 남을 지속적으로 속이고 결국 살인이란 중범죄로 이어진다. 리플리 증후군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뜻한다. 한 사례로 서울 명문대 시험에 불합격한 수험생이 해당 대학의 ‘과잠’을 입고 다니며 부모뿐만 아니라 지인들에게도 명문대 신입생으로 속이는 사례도 있었다.

전청조는 어쩌면 사기꾼임에는 틀림 없지만, 치밀하기보다는 스스로가 리플리 증후군에 중독돼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자신을 재벌 3세라 믿고 대담한 연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전청조를 멈추지 못하면 앞으로도 그의 사기 행동으로 수많은 선량한 피해자들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다.

마흔이 넘었다는 남현희씨의 머릿속도 굉장히 궁금하다. 결혼 상대자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펜싱 대결을 한다?, 트렌스젠더와의 관계를 통해 임신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은 점 등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전청조는 그 누구도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은 것 같다. 여자와 남자의 삶을 번갈아가며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전청조는 허구의 세계를 믿고 남들이 잘도 속아 넘어가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돈도 얻자 희대의 사기극을 멈출 수 없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남현희씨가 15세 연하의 재벌 3세랑 재혼한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필자마저도 제목을 보는 순간 의심이 들었다. 그 배우자라는 사람이 재벌 3세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겠다라는 촉이 왔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멋들어진 무언가를 설정하고 설득할 만한 환경을 가공해야 한다. 미국 스타트업 ‘테라노스’ 창립자 엘리자베스 홈즈도 기술력에 대한 정확한 검증이 없었는데도 미모의 인물과 허위, 과장된 주장을 통해 투자자를 속이고 기업의 시장가치를 90억 달러까지 치솟게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까발려지고 대규모 사기 행각이 발각됐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캔’의 실존 인물이었던 프랭크 에버그네일도 1965년 140만 달러를 사기 친 가출한 17세 고등학생이었다.

어쩌면 전청조 뒤에 그를 조종한 영리한 지휘자가 숨어 있는 지도 모른다. 거짓을 연기로 상상해 현실화시키는 것은 혼자서는 벅찰 수도 있다. 자신의 통장 잔고가 51조원이라고 주변인들에게 허풍을 친 점에는 웃음만 나온다. 파라다이스, 재벌 3세, 잠실 시그니엘, 수십조 잔고 등의 키워드들은 남현희씨를 쉽게 속일 수 있었고, 주변 피해자들도 농락하며 돈을 편취했다.

27세 여성이 시그니엘에 1년 가까이 거주한 큰 금액의 월세 자금은 어디서 났는지, 남현희씨에게 선물한 고가의 벤틀리, 경호원 비용 등 자금 출처도 경찰의 빠른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프로포폴 투약, 마약 복용뿐만 아니라 사기 행각도 청소년들에게 심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미스테리한 사기극의 주인공 27살 전청조 이슈는 한 주간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경찰이 요즘 꽤 바빠졌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연예인 마약리스트 조사와 더불어 사기극의 진실까지 사회가 더 안전하고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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