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언론인·칼럼리스트)

 
불우한 천재 문학가 허균(許筠)은 평소 중국의 단계석 벼루를 사랑해 깨진 것이라도 하나 얻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이 시대 조선 선비 사이에는 명연(名硯)인 단계벼루에 먹을 갈아 붓을 잡는 것이 꿈이었던 모양이다. 값도 비쌀 뿐 아니라 중국에서 넘어온 것이라 구하기가 힘들었다.

임금이 종친이나 총애하는 신하에게 내린 하사품 가운데는 벼루가 빠지지 않았다. 숙종임금이 동생인 명안공주(明安公主)에게 하사한 참외 모양의 단계연은 현재 보물 제1220호로 지정돼 있다. 참외는 다산을 상징하므로 시집 간 누이가 자식 복을 누리기를 바란 것이다.

성종은 학문을 숭상해 학자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에게 옥벼루(玉硯)를 하사했는데 이 유물은 현재 가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점필재는 벼루에다 ‘필옹옥우(畢翁玉友)’라는 글씨를 새겨 항상 가까이했다. 필옹(畢翁)은 자신이고 옥우(玉友)는 벼루를 지칭한 것이다. 그는 생전에 ‘매화벼루(梅花硯)’를 아꼈다고 하며 이는 찬 겨울을 인고한 매화의 절개를 사랑한 때문이다.

정조 때 학자 유득공(柳得恭)은 중국을 두 번이나 다녀오면서 다양한 벼루를 수집한 컬렉터였다. 그는 좋은 벼루라면 친구의 것이라도 몰래 훔쳐 소장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가 단계연을 훔쳐 지었다는 도연(盜硯) 시를 보면 그 집착을 알만하다.

“(전략) 소동파는 벼루에 침을 뱉어 가진 일 있네 / 옛사람도 그러했거늘 나야 말해 무엇하랴 / 낚아채 달아나니 걸음도 우쭐우쭐 / 이 벼루 색깔 붉어 그리도 얻기 어려운겐가? (하략)”

유득공은 조선, 중국의 벼루뿐 아니라 일본 명연까지 두루 소장했다. 남포 오석(烏石), 종성 창석(蒼石), 북청 청석부(靑石斧), 안동 마간석(馬肝石), 성천옥(成川玉), 풍천 청석(靑石), 평창 적석(赤石), 중국 단계석(端溪石), 일본 징니(澄泥) 등 수집 목록도 다양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득공은 보령 남포 오석(烏石) 벼루를 최고로 쳐 애완했다. 그리고 안동의 마간석을 최하로 평가했는데 남포연은 단계연, 흡연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시를 짓기도 했다.

벼루(硯)는 붓(筆), 종이(紙), 먹(墨)과 함께 문방사우로 불린다. 보배처럼 진귀한 친구들이라고 해 문방사보(文房四寶), 벼슬 후(侯)자를 붙여 문방사후(文房四侯)라고도 불렸다. 중국인들은 현재도 문방사보라는 지칭을 많이 쓴다.

지난해 한 일본인이 20여 년 수집한 중국의 문방사보 198점을 부산시에 기증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왜 중국 유물을 고향에 보내지 않고 한국에 기증한 것일까. 일제 식민통치를 반성 않는 일본인을 대신해 사죄하는 마음에서 한국에 기증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 서울 상암IT타워 전시장에는 일본인이 부산시에 기증한 수량보다 훨씬 많은 중국의 고연(古硯)을 소장하고 있는 한 전직 교수의 벼루전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전시에는 무려 800여 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모두 진귀한 중국의 고명연이다. 이는 소장자가 30여년 사비를 들여 모은 것들이다.

작품을 시대별로 보면 위로는 중국의 명대(明代)에서 청대(淸代)인 근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대부들이 사용해온 홍사연 단계연 흡주연 징니연 등 4대 명연이 모두 망라돼 있으며 용, 기린, 사군자 등을 섬세하고 유려하게 조각한 우수한 작품이라고 한다. 중국 고연 전문가들은 학술적 가치도 높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지난해 유네스코에 문방사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했다. 앞으로 한·중·일의 희귀한 벼루는 더욱 가치가 빛날 것이며 중국의 명연들은 소중하게 대접받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도 문방사보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힘을 기울일 때다.

영토분쟁으로 한·중·일의 안보미래가 불투명한 차제에 문방사보로 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서화(書畵) 교류와 중흥을 통해 삼국 간 평화회복의 기운을 조성했으면 한다. 
 

▲ 서울 상암IT타워 전시장에서 열린 중국 벼루 전시회. 약 800여 점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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